
<미지의 서울> 이호수(박진영)라는 인물에 어떻게 정을 붙이지 않을 수 있을까. 잔잔한 표면 아래, 깊은 물살을 품고 있는 호수처럼, 이호수는 내면의 성장통을 딛고 꼿꼿이 일어선 인물이다. 이호수는 현실에 찌든 유미래(박보영)와, 자유롭게 사는 듯해 보이는 유미지(박보영) 그 둘을 모두 이해하면서도 둘의 인생에 섣불리 개입하거나 조언하지 않는, 한 걸음 물러날 줄 아는 성숙함을 보인다.
이호수는 미지의 말마따나 “바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옳은 일’을 좇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대형 로펌을 그만두고, 약자를 변호한다. 그래서 이호수는 가장 보통의 직장인들을 밀착해서 표현한 <미지의 서울>에서 가장 판타지스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직장인들은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신념을 좇아야 할지, 혹은 현실에 발맞추어야 할지 고민하니 말이다.

<미지의 서울> 속 이호수의 ‘무던함’은 태생적인 것이 아닌, 만들어진 것이다. 가령 “내가 괜히 자고 가래서 억지로 있는 건 아닌가. 두손리 막차 타려면 최소 몇 시엔 나가야 하나. 언제 이부자리를 깔아야 네 마음이 편할까. 소파에 앉아야 하나, 바닥에 앉아야 하나. 반팔만 입으면 보기 흉할 텐데 뭐라도 걸쳐야 하나. 입었다, 벗었다만 세 번 한 거야, 이거.”(<미지의 서울> 9화 중)라는 그의 대사는 그의 ‘무던함’이 수많은 고민 끝에 탄생했음을 나타내는 증거다. 고고해 보이지만 미친 듯이 물갈퀴질하고 있는 백조처럼, 그의 무던함은 수많은 장고와 숙려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망설임 없이 신념을 좇는 현재의 호수.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단단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현재의 호수 역시 단지 단단함을 ‘연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수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큰 교통사고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신체적 손상을 입었다. 그는 10대 시절에는 이 ‘결함’을 숨기기 급급해 극도로 예민했다. 다만, 현재의 이호수가 단단함을 ‘흉내’ 낼 수 있고,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에 덤덤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과는 삶의 태도가 정반대였던 유미지와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경험이 큰 몫을 했다.
호수는 어린 시절 큰 병을 앓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받은 미래와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예민한 인물, 그리고 덤덤한 인물 두 가지의 인물이 모두 돼봤던 이호수는 미지와 미래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만든다. 이호수는 미지와 미래, 두 극단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 아니라, 실은 두 지점을 잇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미래와 미지, 두 상태를 모두 겪어봤기에 무덤덤해질 수 있는 성숙한 태도는 <미지의 서울> 이호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호수 ‘본체’, 배우 박진영이 해석하고 표현한 호수의 깊이란, 바로 절제된 연기에서 기인한다. 이호수는 말보다도 눈빛의 깊이로 감정을 표현하는 인물이다. 박진영이 연기하는 이호수는 내면에 감정의 파고를 품고 있으면서도, 남에게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미지를 향한 오랜 사랑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혹은 부담스럽게 드러내지 않는 대신 작은 행동과 배려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박진영은 눈빛과 느린 몸짓, 대사의 호흡으로 호수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 박진영은 의도적으로 낮고 느린 목소리 톤과 대사로 이호수의 캐릭터를 잡아갔다. 매 작품,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목소리 톤을 잡아가는 과정을 가장 먼저 거친다는 배우 박진영은 이번에도 이호수의 삶의 궤적과 가장 닮은 목소리로 그를 연기한다. 실제로 박진영은 “호수가 대사는 많지만 과묵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라며 “말을 천천히 하려고 했고 대사의 호흡을 느리게 가져가며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디테일한 연기 포인트를 전하기도 했다.


<미지의 서울> 미지 역시 미래처럼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 미래 역시 미지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듯, 미지와 미래는 상반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욕망, ‘괴롭지 않은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품고 사는 인물이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상반된 삶을 사는 미래와 미지처럼, 사실 박진영의 삶은 그 자체로 1인 2역이었다. 가수 활동(GOT7)과 배우 활동을 오가는 그의 현재진행형 여정을 지칭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쌍둥이 형제 일우와 월우의 1인 2역,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하이파이브>에서 배우 신구와의 2인 1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등, 한 뿌리에서 뻗어나간 다양한 감정과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 능하기도 하다.

고고해 보이지만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 미친 듯이 물갈퀴질하는 이호수처럼, 디테일에 강점을 둔 박진영의 연기는 단지 그의 ‘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끊임없는 연구와 해석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연기공부를 할 때 캐릭터의 목소리에 그 캐릭터의 역사가 담겨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 작품 그 캐릭터만의 목소리를 찾으려 한다”라고 전한 바 있는데, 이 원칙은 <미지의 서울> 이호수에게도, 또 <하이파이브>의 영춘을 만드는 데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마치 과거에 성장통을 겪었기에, 현재의 호수가 자신만의 신념을 망설임 없이 좇는 것처럼, 치열한 고민 끝 빚어진 현재의 박진영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수 혹은 배우 중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중심을 ‘진정성’에 둔 채 자신의 굳건한 기준을 바탕으로 매 작품, 그리고 매 앨범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하이파이브> 개봉 당시 진행된 씨네플레이와의 인터뷰에서 박진영은 연기와 가수 활동이 시너지를 내는 것 같다며, “한 쪽에서 얻는 에너지가 다른 쪽에서 지쳤을 때 리프레시가 된다. 이런 과정이 여전히 나를 신선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나의 밸런스를 맞춰준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두 가지의 지점을 오가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자신만의 그라데이션을 만드는 박진영. 그가 그라데이션을 완성하기까지는 <미지의 서울> 이호수처럼 수많은 고민과 성찰이 있었을 테다. 한때 <사랑하는 은동아> <유미의 세포들>을 비롯한 작품 활동으로 인해 ‘남자 수지’라고 불릴 정도로 ‘첫사랑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현재, <크리스마스 캐럴>의 일우와 월우, 그리고 <하이파이브>의 빌런 영춘까지, 일상적인 캐릭터와 장르적인 캐릭터를 오가며 그만의 그라데이션으로 연예 활동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