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났지만, 더위는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요즘, 이럴 땐 시원한 극장으로 달려가 오싹한 공포영화 한 편을 보고 싶다. 한 손엔 라지 사이즈 제로 콜라를 들고, 다른 쪽엔 팝콘을 끼고 시원한 극장에 앉아 있으면 피부에 남아있던 뜨거움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몸 안에 고여있던 여름의 눅눅함과 열기는 공포 영화로 한 번 더 식혀주니, 그제서야 여름을 즐기는 기분이 난다. 여름의 진정한 매력은, 더위를 피해 만난 시원함 아니겠는가.
‘공포영화를 본다고 진짜로 시원해지겠어?’라고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다. 공포영화를 보면 뇌에 있는 편도체가 활성화되는데, 이 편도체는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장기로 피를 보내기 위해 편도체는 피부의 모세혈관을 수축시켜 열 방출량을 줄이는데, 체온이 약간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주위 온도가 더 싸늘하게 느껴진다고.
여름 = 공포영화, 가 ‘공식’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8월에 개봉한/개봉하는 공포영화 신작들을 소개한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개봉일 2024년 08월 14일
감독 페데 알바레즈

호러 SF 프랜차이즈계의 전설, <에이리언> 시리즈의 7번째 작품,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개봉한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으로 시작했다.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작으로, B급 영화에 머물던 외계인 공포 영화 장르의 수준 자체를 올렸다. 이후 나온 외계 생명체 호러 영화 중 <에이리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 특히 등장인물의 가슴을 뚫고 탄생하는 외계 생명체(페이스 허거)의 모습은 여전히 회자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1편에서 완벽한 미장센으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을 극대화했다면, 2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에이리언 2>(1986)에서는 에이리언 군단의 등장으로 보다 활극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액션영화에 가깝다. 극찬을 받은 1편과 2편 이후, <에이리언 3>(1992), <에이리언 4>(1997)도 잇달라 각자만의 개성으로 무장해 <에이리언> 시리즈는 영화계 대표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했다.

이번에 개봉하는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1편과 2편 사이의 시간을 다룬 작품으로,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와 같은 프리퀄 시리즈로 분류되었다. 이번에 메가폰을 잡은 감독은 페데 알바데즈 감독으로, <이블 데드>(2013), <맨 인 더 다크>(2016)를 연출하며 제한된 상황에서 마주한 공포를 극대화하는 데 탁월하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광팬으로도 유명한데,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모든 영화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하며, “스토리부터, 캐릭터, 기술, 크리처까지 연결되어 있고, 어느 하나도 생략하거나 무시하고 싶지 않다. <에이리언>부터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소품 하나까지 1편에서 사용한 것을 쓰고 있어 그가 얼마나 이 시리즈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N차 관람을 목표로 한다면 <에이리언: 로물루스>에 숨어있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는 관람 포인트.
<마야>
개봉일 2024년 8월 16일
감독 응우옌 후 호앙

<마야>는 베트남 작품으로, 메콩강을 배경으로 샤머니즘에 기반을 둔 오컬트 호러무비다. <마야>는 베트남의 전통 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메콩강에는 악귀 마야가 살며 사람을 홀려 영혼을 바꿔간다’는 오래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레(비엣 흐엉)는 물에 빠진 시체를 인양하는 직업 봇삿이 업이다. 레는 메콩강에서 시체를 건져 가족에게 전해주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점차 그 수가 늘어나는 걸 느낀다. 그 가운데 그의 딸까지 미지의 존재, 마야에게 잡혀가면서 악귀의 존재가 드러난다.

무속신앙에서 물귀신은 다른 사람을 끌어당겨야만 자기가 나올 수 있기에 그 어떤 귀신보다 인간에게 해로운 악귀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 번 익사 사고가 나면 그 자리에서 계속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물론 샤머니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므로, 누군가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는 거라 말할 수 있다.(그리고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물귀신에 대한 묘사다. 지독할 만큼 인간에 집착하고, 늘 ‘악귀’의 형태로 영을 달래는 것조차 불가능한 존재. <마야>에서는 물귀신에 대한 전 세계인이 느끼는 일정한 지점을 ‘메콩강’이라는 낯선 배경에서 풀어냈다. ‘시체를 인양하는 주인공’과 ‘메콩강의 악귀’라는 독특한 소재로 익숙한 물귀신임에도 미지에서 오는 공포와 예측불허함이 배가 되었다. 특히 연출적인 부분에서 베트남의 토속신앙과 베트남 특유의 이국적 분위기를 한껏 강조한 게 포인트.
<늘봄가든>
개봉일 2024년 8월 21일
감독 구태진

곤지암 정신병원, 영덕 흉가, 그리고 제천 늘봄갈비(늘봄가든)는 한국 3대 흉가로, 2009년 인터넷에 올라온 한 괴담으로 인해 흉가 취급을 받게 되었다. 괴담 내용은 이렇다. 종업원과 사장, 사장의 아내와 식물인간인 딸이 지내고 있는 늘봄가든에서 딸이 죽고 아내도 얼마 안 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 사장이 가스를 틀어 자살했다는 것이 괴담의 결말. 이 괴담이 널리 퍼지자 담력체험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 일부가 유령을 봤다고 증언하며, 결국엔 한국 3대 흉가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영화 <늘봄가든>은 위 괴담 스토리가 아닌, 늘봄가든의 ‘흉가 이미지’를 차용해왔다. 남편 창수(허동원)를 갑작스럽게 잃은 아내 소희(조윤희)는 남편이 유산으로 제천에 집을 남겨두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이상한 점은 이틀 전에 찍은 사진 속에 ‘죽은 남편의 실루엣’이 찍혔다는 것. 소희는 그렇게 남편의 마지막 흔적, 늘봄가든으로 향하게 된다. 방문한 그날, 소희는 남편처럼 보이는 남자를 발견하지만 이내 정신을 잃는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카들이 놀러와 ‘이모부가 잡아당겼다’라고 말하면서 이 집에 무언가가 있음이 점차 명백해져 간다. 2018년, 마찬가지로 대표 흉가를 소재로 한 <곤지암>은 인터넷 방송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1020의 호응을 받아 깜짝 흥행에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대표 흉가를 소재로 한 <늘봄가든>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매지너리>
개봉일 2024년 8월 28일
감독 제프 와드로

저예산 공포영화를 잘 만드는 제작사로 탄탄한 신뢰로 쌓은 ‘공포영화의 명가’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이 <메간>(2023)에 이어 또 다른 ‘무서운’ 인형을 들고 왔다. 신작 <이매지너리>는 지하실에서 발견한 꼬질꼬질한 곰인형 천시와 주인공 앨리스(파이퍼 브라운)가 상상친구가 되면서 어떠한 게임 리스트를 완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의 특징적인 점은, 천시가 ‘꽤 귀엽게’ 생겼다는 것. 천시는 어렸을 적 관객의 애착인형처럼 적당히 통통하고 꼬질꼬질한 게 퍽 귀엽게 생겼다. 이러한 점을 블룸하우스에서는 ‘큐렌들리(Cute + Friendly, 귀엽고 친숙한) 호러’라 명명했다. 제작자 제이슨 블룸은 ‘큐렌들리 호러'에 대해 “유년시절의 추억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오싹하고 섬뜩한 요소를 더한다”라고 말하며 큐렌들리 호러의 매력을 소개했다.

인형 호러 영화는 <처키> 시리즈를 시작으로 <애나벨>(2014)까지 꾸준히 인기있는 장르지만, 누가 봐도 나를 저주할 것처럼 생긴 다른 인형들과 달리 <이매지너리> 속 천시는 솜방망이를 갖고 있는 무해한 이미지다. ‘호러한 무드’보다는 게임 같은 판타지성을 가미한 게 작품의 특징이라, 파란 문 뒤 상상하는 모든 게 현실이 되는 무한 증식 공간은 어른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실제로 12세 관람가이기 때문에 지독한 호러 무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순한맛 호러를 즐기고 싶은 어른이나 아이들과 함께 극장 나들이를 갈 예정이라면 추천하는 작품.
<기예르모 델토로의 호기심의 방> *OTT 추천

만약 무더위로 지쳐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면 넷플릭스를 뒤적거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수백 배로 많아진 넷플릭스 안에서 스마트폰에 집중력을 뺏기지 않을 만큼 짧지만 짜임새 좋은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이들을 위해 호러 옴니버스 시리즈, <기예르모 델토로의 호기심의 방>을 추천한다. 기괴하고 아름다운 연출로 유명한 그가 시리즈 총괄 제작을 맡았고 각 에피소드의 연출/각본은 각기 다른 감독들이 맡았다. 총 8편의 중/단편으로 이뤄진 이 시리즈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이름이 붙은 작품답게 크리처, 악마, 꿈 등 작품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그의 팬이 아니라면 순서대로 보기보단 입맛대로 골라보는 게 조금 더 즐겁다.

무엇을 보아야 할지 고민스럽다면 개인적으로 3화 <부검>을 추천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리학자가 기괴한 시체를 부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전반적으로 찝찝하게 끝나는 다른 작품과 달리 깔끔한 끝맺음으로 대부분 평이 좋다. 시리즈의 다른 편, 5화 <모델> 같은 경우엔 서브 컬쳐 소설로 유명한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소설, 「픽맨의 모델」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뒷맛이 영 찝찝할 것이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하나의 시리즈로 묶기엔 스타일과 만듦새 모두 달라 시리즈의 모든 편에 만족할 순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의 시작 부분에 기예르모 델토로가 짧게 설명하는 파트가 있기 때문에 해당 부분으로 살짝 작품을 짐작할 수 있으니 그의 설명을 스킵하지 말고 보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