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의 감독들과 만났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아동권리영화제의 테마는 ‘우리의 질문이 세상을 구한다’이다. 지난 11월 16일에는 오리지널 필름 <이세계소년>을 중심으로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토크 행사가 열렸다면, 한 주 뒤인 23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단편영화 경쟁 섹션 수상작 6편을 차례대로 상영하고 총 3회의 ‘씨네아동권리토크’ 시간을 가졌다.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등을 수상한 미래의 감독들과 함께 ‘우리의 질문’이 자유롭게 오고 가는 뜻깊은 자리였다. 첫 번째로 오후 2시 30분부터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이 참석해 우수상을 수상한 <콘>의 유지인 감독, 우수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네잎클로버>의 곽승희 감독과 대화를 나눴고, 두 번째로 오후 4시 40분부터 <야구소녀> <메기>의 이주영 배우가 참석해 최우수상을 수상한 <헨젤: 두 개의 교복 치마>의 임지선 감독, 우수상을 수상한 <내 방>의 한세하 감독과 대화를 나눴으며, 마지막 세 번째로 오후 7시부터 김영미 분쟁 지역 전문 PD가 참석해 대상을 수상한 <영화로운 작음>의 권예하 감독, 우수상을 수상한 <그 애>의 강민하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수상작들은 11월 한 달간 아동권리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데, 수상작들을 극장의 큰 화면으로 보고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예매 오픈과 동시에 모든 회차들이 매진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올해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분쟁과 아동권리’라는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두 단편이 수상하여 더욱 뜻깊은 해였다. 먼저 대상을 수상한 권예하 감독의 <영화로운 작음>은 어렸을 적 실제로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부모님과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남수단 내전을 그린 작품이다. 2016년 당시 10살이었던 권예하 감독은 “총과 칼이 모두를 무력하게 만들 때 카메라를 들었다”며 직접 아버지와 어머니를 인터뷰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교회와 학교를 짓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했던 부모는 결국 큰 트라우마를 안은 채 귀국했고, 권예하 감독은 자신과 친했던 동네 아이들이 총을 들고 소년병으로 가게 됐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권예하 감독은 “내가 이 주제를 건드려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관련 기사나 영상을 찾아보게 됐고, 한때 나와 동네 친구들이었던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에 공감하고 그걸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국으로 귀국해서 적응하는 것조차 힘드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도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게 힘드셨지만 인터뷰어로 나와주신 만큼, 일단 시작했으니 최대한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라고 말했다.

강민하, 김시은 감독의 <그 애>는 일단 10분 정도의 애니메이션이어서 눈길을 끈다. 군인들이 등장하고 주인공 소녀는 말없이 피해 다닌다. 전쟁의 공포를 아이의 시선으로 담아낸 <그 애>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분쟁과 아동권리’라는 주제를 판타지를 가미하여 그려낸다. 무엇보다 적절하게 배치되어있는 음악의 사용이 눈에 띈다. 도입부에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어린 병사들이 즐겨 불렀다는 ‘즐거운 나의 집’(홈 스위트 홈)이 흘러나오고, 후반부에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친구들에게 헌정한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이 나온다. 김시은 감독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강민하 감독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 뉴스를 보고 작품을 기획하게 됐다”며 “21세기에 이런 무력 전쟁이 일어난다는 걸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직접 겪지 못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그 애>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실제로 80여 개국 이상의 분쟁 지역을 취재한 분쟁 지역 전문 PD이기도 하고, <영화로운 작음>의 배경이기도 한 남수단에 실제로 취재를 다녀온 김영미 PD는 일단 두 작품에 놀라움을 표했다. “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나 역시 현재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전쟁을 취재 중인 상태이기 때문에, 두 작품을 보고 정말 놀랐다.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공감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게 고맙기도 했다”며, “<영화로운 작음>은 솔직히 남수단의 풍경이 펼쳐질 때부터 ‘과연 내가 끝까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서운 영화였다. 작품 속 소년병들을 보면 왠지 내가 아는 얼굴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내가 분쟁 지역을 다니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공포감이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거친 질감을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어서, 그저 영감과 상상만으로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현장에 직접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어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 그 표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구나 <영화로운 작음>에 등장하는 남수단의 소년병에 대해 얘기할 때는 “미리 보고 왔는데, 계속 보는 게 힘들어서 몇 번을 끊어가며 봤다”고 눈물을 보이며 극장에 잠시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아동권리영화제는 단편영화 출품을 받을 때 ‘아동 촬영 현장에서의 가이드라인’을 자체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뿐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아동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캠페인하고 있는 것. 두 영화는 각각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어서 ‘배우’와 소통하며 만든 극영화가 아니지만, 어떤 자체적인 가이드라인과 기준점을 갖고 작업했는지 물어볼 수 있었다. 먼저 강민하 감독은 “비록 애니메이션 캐릭터이긴 하지만 실제 아동배우와 작업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작품 속 아이의 고통이 지나치게 고스란히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보다 잔인하게 묘사하는 연출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 안 하기로 했고, 자극적인 연출로 느껴지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하고 주의했다. 가령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곡이 흐를 때, 그게 아이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보니까 아이의 비명소리를 포함해서 피 등 보다 적나라한 묘사로 연출하려고 했는데, 김시은 감독과 얘기하면서 ‘이건 옳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 후반부를 싹 다 갈아엎었다. 그래서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회전목마나 폭죽처럼 아이가 즐거워했던 기억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권예하 감독도 “남수단에 남겨진 다른 친구들이 더 오래 고통을 겪었을 거다. 그 친구들이 생각하는 전쟁에 대해서도 얘기 나누고 싶었는데 다시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고민이 컸다”며 “언제나 남수단 부족민들이 피해자로 그려지는데, 물론 실제 피해자라 하더라도 과연 그렇게 그려지길 바랄까, 하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통해 영원히 기록으로 남게 될 텐데, 거기서 울기만 하는 자기 모습을 보는 게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일일이 다 허락을 받고 싶고 작품 속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며, 신냉전의 시대가 도래한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한 이때, 10주년을 맞은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영화제에 ‘전쟁’을 주제로 두 편이 출품되어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은 물론, 수상까지 하게 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그 애>를 구상하게 된 강민하, 김시은 감독이 전쟁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곡 ‘쿠프랭의 무덤’을 삽입곡으로 사용한 것 역시 무척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1차 세계대전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이 창립된 해가 바로 1919년이기 때문이다.(모리스 라벨은 ‘쿠프랭의 무덤’을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작곡했다) 전 세계 아동 6명 중 1명이 전쟁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휴전된 지 71년째가 되어 어쩌면 전쟁이라는 세상의 현실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를 현재 한국의 어린 감독들이(강민하, 김시은, 권예하 감독 모두 미래의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각각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라는 서로 다른 매체로 접근해 이토록 놀라운 결과물을 완성한 것은, 아동권리영화제의 성취이자 한국영화계의 성취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동권리영화제의 뜻깊은 10년을 근사하게 함께 할 수 있었다.


PS. 아동권리영화제 10주년 오리지널 필름 <이세계소년>과 5편의 단편영화 수상작은 영화제가 끝나는 11월 마지막 날까지 아동권리영화제 홈페이지의 ‘온라인 상영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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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주성철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