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원이 12월 4일 개봉하는 영화 <소방관>으로 9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에서 그는 신입 소방관 철웅 역을 맡았다. 요구조자(2020년 기점으로 '구조대상자'로 개선됐다)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현장에서 대장의 지시에도 불응하는 베테랑 소방관 진섭(곽도원)과 달리 철웅은 소방 규칙을 외고 다니며 철두철미하게 지키려 한다. 이렇듯 철웅은 진섭과 대조적인 인물로 존재하며 영화의 중요한 한 축이 되어주었다. 주원 배우를 만나 이번 작품 <소방관>과 인물 철웅에 대해 들어보았다.

<소방관>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하셨어요. 그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제가 그렇게 오랜만인지 몰랐는데 스크린에 9년 만에 복귀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기대가 되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잘 봐서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출연한 배우로서 스코어가 좋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4년 만에 영화를 개봉하다 보니 “묶여 있던 족쇄가 풀리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랜 시간 후에 개봉을 맞는 배우님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그 어떤 작품보다 많이 기다렸어요. 코로나도 있었고, 이슈도 있었지만, 제게 이 작품은 처음에 감독님께 콜을 받았을 때부터 남다르게 다가왔던 작품이거든요. 왜냐하면 실화를 베이스로 두고 있어서 다른 배우들과 감독님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명감이 생겼었어요. 갑자기 영화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정말 너무 반가웠어요.
그 사명감이 걱정이나 마음의 짐처럼 다가오지는 않으셨어요?
그게 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서라도 잘 알리자 이런 생각이 더 컸어요.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굿 닥터> 때도 우리 작품으로 소아과가 더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때 당시에 많이 개선되기도 했었고요. 제가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작품으로나마 그런 사실들을 대중에게 알리고 인식시킬 수 있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영화도 소방관뿐만 아니라 환경이 좋지 않은 다른 직업군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에 대해서는 알아보고 참고한 게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촬영하는 내내 봤어요. 매일매일 영상을 보고, 물론 우리 영화가 상업영화이지만, 느낌이 달랐어요. 마음가짐이 무너지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참사 관련 영상을 매일 보고, 소방관분들과 관련된 영상도 다 찾아봤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계신지 느끼려고 찾아봤고요. 현장에 소방관분이 계셨지만, 그분한테 안 좋은 것들을 질문하기가 좀 그랬어요. 감독님 말씀대로 안 좋은 것을 들춰내는 것 같아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다 찾아보고 임하려고 했어요.
베테랑인 진섭과 신입 소방관 철웅은 대조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인물 철웅은 어떻게 만들어 가려고 하셨나요?
캐릭터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근데 철웅은 신입 소방관이기 때문에 그 모습을 많이 살리고 싶었어요. 화재 현장에 들어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무섭기도 하고, 걱정되고, 긴장하는 거죠. 그래서 변수에 더 크게 반응하고, 이런 모습들에 포커스를 뒀어요. 그리고 저는 철웅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좋게 봐요. 나중에 장례식장에서 경례하면서 눈물을 꾹 참고 “제가 형들 몫까지 소방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철웅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초반에 어리숙하고 소방관으로서의 자질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빌라 화재 후에 철웅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잖아요.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알아보셨나요?
사실 그전에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철웅이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많이 찾아보고 물어보고 했어요. 소방관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소방관분들에게는 당장 몇 시간 전까지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고, 근데 애도하지도 못하고 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인 거잖아요. 죽음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걸 충분히 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 것이 머리와 가슴에 타들어 가는 감정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철웅이 용태 형(김민재)을 잊지 못하고 계속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용태 형을 꿈속에서 만나고, 출동 사이렌이 울렸다고 착각하는 부분에서는 철웅이가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고 있다고 생각했죠.

현장에서 실제로 불을 사용했다고 알고 있는데, 촬영할 때 어떠셨어요? 화면으로 봐도 되게 깜깜하고, 불길이 공포스럽게 느껴졌거든요.
촬영장에서 85% 정도는 실제로 불을 질러놓고 촬영을 시작했어요. CG는 일부에만 들어갔고요. 사실 처음에 화재 현장에 들어갔을 때는 이게 괜찮은 건가란 생각을 했었어요. 안전하게 진행하려고 불을 덜 뜨겁게 느낄 수 있는 젤을 몸에 발랐지만, 발랐음에도 너무 뜨겁고, 눈앞에서 정말 큰불을 보니까 멍해지더라고요. 금방이라도 나한테 불길이 올 거 같았고요.
또 처음에는 감독님이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지폈는데, 진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거예요. 라이트를 켜도 빛이 정말 눈앞에서 멈췄어요. 그래서 벽을 짚고 바닥을 기면서 갔는데, 카메라 감독님이 “배우들이 화면에 안 나온다”고 말씀하셔서 조절했죠. 고증해 주시는 소방관분이 말씀하시길 실제로도 들어가면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바닥과 벽을 짚으면서 다닌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상으로는 저희의 모습이 보이지만, 그때의 그 상태를 기억하고 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여튼 정말 초긴장의 상태로 연기를 했는데, 그게 오히려 저한테는 자연스러웠어요. 화재 현장에 신입 소방관의 모습으로 들어갔으니까요. 그리고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CG가 실제로 해 놓은 것처럼 리얼할 수는 없잖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리얼하지 않은 불을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감독님도 진짜로 불을 지피신 것 같고요. 여러모로 CG에 의존을 안 한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실제 소방관이 쓰는 장비도 착용하셨을 텐데, 착용했을 때는 어떠셨어요?
그때 그 당시에 썼던 소방 장비들로 촬영했어요. 한 20kg 이상의 장비들을 메고 촬영했는데 정말 둔하기 그지없었어요. (웃음) 옷 자체도 뻣뻣하고 무거웠고, 장비도 마찬가지고요. 소방관분들이 이 상태로 화재 현장에 계속 들어가셨구나. 정말 쉽지 않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쉴 때는 장비를 풀 수 있는데, 그것도 일이에요. 그래서 다 착용한 채로 쉬었어요.
<소방관> 촬영 후 실생활에서 바뀌신 부분이 있을까요?
원래 제가 안전주의자예요. 뭔가 위험할 것 같은 것을 미리미리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눈이 오면 차를 안 끌고 나가요. 제 어머니도 배를 탄 적이 있었는데, 좋은 자리 놔두고 구명조끼 걸려 있는 곳에 앉고 그러세요. 저도 그 성격을 닮은 것 같아요. <소방관> 이후에는 차에 들고 다닐 소화기를 샀어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SNS에 그런 관련 영상들이 뜨더라고요. 어느 영상에서 봉고차에 불이 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에서 소화기를 꺼내서 꺼주는 걸 보고 샀어요. 저도 그런 상황이 오면 불을 꺼드려야지 생각했죠.
영화에서 짧게나마 ‘흐린 기억 속의 그대’ 노래에 맞춰 안무를 보여주시는데요. 현장에서는 더 길게 보여주셨을까요?
현장에서는 끝까지 다 했었어요. 안무도 다 외웠었고요. (웃음) 근데 영화 보니까 조금만 나왔더라고요. 그렇지만 느낌만 주고 끝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끝까지 보여줄 필요가 없는 장면이니까. 감독님이 편집을 잘하셨다고 생각했죠.

영화 속에서는 대원끼리 굉장히 친근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현장에서도 다른 배우분들과 그랬을까요?
계속 같이 있었어요, 쉴 때도 같이 쉬고, 혼자 하는 게 거의 없다 보니 리허설할 때도 얘기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함께하는 작업이 많아서 거기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실제 소방서 팀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정말 한 팀처럼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이유영 배우와는 <그놈이다> 때 호흡을 한 번 맞추고, 다시 조우하셨는데요. 두 분의 호흡은 어땠나요?
유영이는 예전에도 잘했고, 작품을 같이 한 사이여서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조금은 더 의지했어요. 유영이가 철웅이를 바로잡고, 위로해 주는 역할이잖아요. 실제 생활에서도 그런 모습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곽경택 감독님은 소방관에 대한 부채 의식으로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배우님도 같은 마음이셨을까요?
어릴 때 소방관을 좋아했어요. 소방차 장난감을 갖고 많이 놀고, 남자애들은 많이 갖고 있었죠. 저도 그런 아이였고요. 지나가는 소방차를 보면서도 “소방차다!” 외치면서 따라다녔어요. 한때는 꿈이 소방관이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걸 잊고 살았었죠. 근데 <소방관> 대본을 받았을 때는 되게 죄송했었어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보통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럴 정도로요. 어떻게 해야 이 일을 할 수 있지 이런 생각도 들었죠. 영화 속 대사로도 나오잖아요. 소방관은 “내 목숨을 갖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고요.
홍제동 화재 참사의 생존자 한 분은 그때의 기억을 잃으시고, 몇 년 동안 재활을 한 뒤 힘들게 다시 생활하시지만 “전 그래도 다시 들어갈 거 같아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수년을 재활하고, 기억도 안 나지만, 똑같은 상황이 와도 들어가겠다고 하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표현으로도 그 마음이 다 안 담기는 것 같아요. 참 죄송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고, 멋진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최근에 SNL에 출연하셨는데, 변화를 시도하려고 출연하신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하네요.
변화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데, SNL에 출연해서 그걸로 뭘 해야지 그런 건 아니었고요. 저도 성격상 하나를 할 때 마음속에서 막는 게 있어요. 근데 이제는 '어느 순간부터 좀 그러지 말자, 대중이 저의 다양한 모습을 원하고, 저 또한 연기라는 것을 시작할 때 일부의 모습만 보여주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죠. 그래서 SNL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회의하면서도 “더 할 수 있습니다”, “더 아이디어를 주세요”라고 했어요.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생각했죠. 예전에는 사람들이 “작품 잘 봤습니다”라고 했는데, 요즘은 “SNL 잘 봤습니다”라고 하는 분들이 생겼어요. (웃음)
SNL 출연도 그렇고 주원 배우가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려는 변화의 과정에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럼 해보지 않은 연기 중에 하고 싶은 것도 있을까요?
요즘따라 저한테 코미디를 해달라는 사람이 있어요. SNL의 영향인 것 같은데요. (웃음) 정확히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확실히 옛날에는 스스로 많이 막았어요. 제 성격도 예능형도 아니고, 근데 요즘 홍보할 때는 예능도 진짜 열심히 해요. 내가 웃겨야겠다는 부담감보다 끝나고 재밌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예능 나가면 정말 힘들어했거든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2006년에 데뷔하시고 나서 이제 활동한 지 20년을 향해가고 계시는데요. 자신의 배우 생활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도 있으세요?
데뷔했을 때부터 변화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변화를 추구하는 편이어서요. 근데 항상 새로운 작품들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맡는 캐릭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도 제가 맡았던 캐릭터들은 다 나름 달랐던 것 같아요. 남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일부러 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대중이 원하는 모습이든 아니든 그게 우리의 일이니까. 물론 잘 되면 더 좋은 거고요.
주원 배우님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소방관>은 어떤 의미를 지닐 것 같은가요?
너무 행복한 현장에, 엄마 같은 감독님을 만나 가장 꾸밈없이 연기했던 작품일 것 같아요. 제가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연기 공부를 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너무 좋아하던 감독님이었는데, 함께하면서 사람으로서 더 좋아진 감독님이에요. 감독님이 오랫동안 존경받는 감독으로서 활동하신 데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억지로 연기를 시키지도 않으세요. ‘조금 더 슬프게 해봐’ 이런 말을 안 하세요. 예전에는 쪽대본 받으면 앞뒤 상황 모르는데 그냥 울어야 할 때도 있었거든요.
근데 감독님은 배우가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줘요. 이번 영화에서는 진짜 불을 피우셨잖아요. (웃음) 제 씬에서도 ‘대사를 이런 느낌으로 쳐야 해’ 그렇게 말하지 않고, 환경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런 현장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촬영장 갈 때마다 행복했었어요. 이렇게 찍은 영화가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다른 배우들과 스코어를 예상해 보기도 하셨나요?
제일 조금 나왔던 게 250, 300만이었고, 대부분은 500만 이상이었어요. 상상만 해도 좋은데요. 근데 간담회 때 감독님이 기교 얘기를 하셨는데, 진짜로 이 영화에 기교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더 소방관분들의 마음을 울리지 않았을까. 관객분들에게 무거운 마음을 갖고 보라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관객분들도 재밌게 보고, 느끼는 바도 있을 것 같아요. 배우들이 한 명 한 명 다 진심으로 임했고, 그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