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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말고 나무를 봤다! 씨플스초이스, 내맘대로 어워즈

씨네플레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그런 명언이 있지만 가끔은 아무리 아름다운 숲을 보아도 한 그루의 나무가 마음에 남곤 한다. 영화 같은 문화예술 작품을 많이 보는 이라면 때로는 누가 봐도 잘 만든 작품보다 뭔가 마음에 콕 박히는 것이 있어 기억하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기자들도 얼마 전 2024년 올해의 영화를 선정하긴 했지만, 각자 마음에 콕 남아서 괜스레 더 챙겨주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 제약이나 한계 따윈 없는 '내맘대로 어워즈'를 열어 좀 더 영업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올해 명명백백한 활약을 보여준 내맘대로 어워즈 수상자를 지금 만나보자.

 

주성철s Choice 올해의 오늘내일상

<리볼버> 정재영 배우

〈리볼버〉배우 정재영
〈리볼버〉배우 정재영

영화에서 오늘내일하는 캐릭터들을 무수히 봐왔지만, <리볼버>의 ‘민기현’ 정재영이야말로 단연 압도적이다. 옆에는 아마도 혈압약을 비롯해 날마다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들이 정갈하게 쌓여 있고, 아무래도 바닥이 더 따뜻해서 소파 대신 그 앞에 담요를 깔아 생활하는 독거노인의 그것을 너무나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기어이 필요한 단어를 끼워 넣어 얘기를 전달하는 그 호흡, 카메라가 꺼지면 왠지 바로 바닥에 드러누울 것만 같은 그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가운데에도 눈빛만은 살아 있어 역시 정재영이다 싶다. 2024년, 오랜만에 만난 배우들 중 가장 반가운 이가 바로 <리볼버>의 정재영이다. 물론 앞서 <노량: 죽음의 바다>(2023)에서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으로 출연해 멋진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정병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카터>(2022)에 특별출연한 것 정도를 빼고는 <기묘한 가족>(2019) 이후 거의 5년 만이었던 것. 그런 그가 <리볼버>에서는 진린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온 하수영(전도연)에게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면서 미약하나마 살짝 질투 섞인 욕망을 섞기도 한다. ‘내공’이란 표현을 아마도 이럴 때 쓰지 않을까 싶다. 출소한 하수영을 도와주려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저주하려는 것 같기도 한 모호한 캐릭터 민기현이야말로 <리볼버>의 매력적인 정서를 잘 보여준다.

 

이진주s Choice 올해의 일잘러상

<전,란> 소이치로(고한민)

〈전, 란〉소이치로(오른쪽)
〈전, 란〉소이치로(오른쪽)

40cm가 넘는 폭설에 교통이 마비돼도 스키를 타고 출근하고, 아닌 밤중에 계엄이 선포되어 불안감에 잠 못 이룬 다음 날도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았던 한국의 2024년. 이 미련할 만큼 성실한 한국인의 뿌리에 대한 실마리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전, 란>에서 찾을 수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전, 란>에서 일본군 선봉장 깃카와 겐신(정성일)의 통역을 맡은 소이치로(고한민). 그는 소위 가방끈이 긴 엘리트 유생이지만 나라가 뒤집히는 바람에 겐신의 ‘파파고’ 노릇이나 하는 처지가 된다. 문제는 겐신은 늘 피가 튀는 난투극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 결국 소이치로에게까지 불똥이 튀게 되고 그는 삽시간에 발목을 잃는다. 이후 그가 영락없는 조선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소이치로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겐신의 말을 통역하는 경이로운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순간적으로 기만당하는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저 상황에서 일을 한다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대내외적 어려움에도 출근 지하철에 몸을 싣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소이치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그에게 약간의 측은지심이 밀려온다. 일본의 앞잡이로서 용서받지 못할 인물임에도 짠함을 불러일으킨 소이치로에게 ‘올해의 일잘러상’을 주고 싶다.

 

김지연s Choice 올해의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상

<핸섬가이즈> 이희준

MAMA에 댄스 퍼포먼스 상이 있다면, 씨네플레이도 질 수 없다. 올해 개봉한 영화에서 인상적인 댄스 퍼포먼스를 보여준 배우들이 너무나 많아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마지막까지 최종 수상자 자리를 놓고 고심한 후보에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후반부에 'Bad Girl Good Girl'(미쓰에이)을 부르면서 춤을 추어 관객들의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저격한 배우 노상현 등이 있었으나, 결국 <핸섬가이즈>의 이희준을 최종 수상자로 낙점했다. <핸섬가이즈>의 이희준은 일명 '설거지 댄스'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남겼다. '설거지할 때 듣는 음악 #3'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그의 보금자리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 '귀찮은 일할 때 듣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상구(이희준)처럼 사소한 일상을 즐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집의 기둥, 소파, 접시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퍼포먼스의 임팩트를 높인 점도 압권이다. 주방세제까지 발랄하게 펌핑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인생은 상구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추아영s Choice 올해의 멍스카상

<핸섬가이즈> 봉구 역의 복순이

〈핸섬가이즈〉봉구 역 복순이
〈핸섬가이즈〉봉구 역 복순이

<핸섬가이즈>에서 자신의 외모에 주눅이 들어 있는 상구(이희준)에게 재필(이성민)이 말한다. “마, 니가 얼마나 잘생겼는데 그딴 소리를 하노…나는 어…터프한 미남 스타일, 니는 쉑시한 미남 스타일”. 형의 말에 금세 기분이 풀린 상구는 입을 귀에 걸며 묻는다. “맞나? 그럼 우리 봉구는 뭔 스타일이고?” 재필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이내 답한다. “봉구는, 인마 개미남?” 서로를 쳐다보며 박장대소하는 두 핸섬가이들 사이에서 봉구(복순이)는 어리둥절해한다. 견빈 뺨치게 잘생긴 봉구는 사실 영화 <핸섬가이즈>에서 비주얼을 담당하는 유일한 존재다. 이 개미남 복순이의 명연은 이희준의 댄스 씬에서 십분 발휘된다. 상구는 설거지를 하려다 말고 대뜸 신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춘다. 상구가 흥에 겨워 자신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내려치자, 봉구가 잽싸게 달려가 그의 엉덩이에 하이파이브를 한다.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은 명(견)배우에게 식은 죽 먹기일 뿐. 단 귀여움을 뽐내며 능수능란하게 연기를 펼치는 복순이에게 치명적인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복순이가 암컷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다들 스크린에서 복순이를 또 만나게 된다면 개미남이 아닌 개미녀라고 불러주자.

 

추아영s Choice 올해의 등골브레이커상

<서브스턴스> 마가렛 퀄리

〈서브스턴스〉마가렛 퀄리
〈서브스턴스〉마가렛 퀄리

<서브스턴스>의 마가렛 퀄리는 북쪽면상을 가뿐히 제끼는 어마무시한 등골브레이커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엄마뻘 되는 데미 무어의 등골을 ‘조사 버린다’. 애초에 영화 속 마가렛 퀄리가 분한 수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과 데미 무어의 등골에서 빼낸 척수를 통해 생겨난 존재다. 처음에는 약물 복용 규칙을 잘 지키던 수는 점차 선을 넘기 시작한다. 인플루언서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눈이 멀어 허구한 날 데미 무어의 척수를 뽑아낸다. 철없는 수 덕택에 데미 무어의 등골은 점점 휘어지고, 주름은 늘어만 간다. 왠지 학부모의 고통(?)에 절감하게 된다.

 

성찬얼s Choice 올해의 몸으로 말해요상

<닭강정> 백정 닭강정 4인방

〈닭강정〉백정 닭강정 4인방
〈닭강정〉백정 닭강정 4인방

올해의 숨은 보석 같은 드라마 <닭강정>. 얼마나 숨은 보석 같은지 작품 내내 숨은 몇 장면을 건진 것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하디 귀한 장면은 ‘기계’를 두고 인간과 외계인들이 대치하는 장면이다. 민아(김유정)를 다시 인간으로 돌려야 하는 선만(류승룡)과 백중(안재홍), 인생을 바꾸고 싶은 태만(정승길), 기계를 압수하려는 인원(유승목), 그리고 이들을 중재해 기계를 다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백정 닭강정 4인방 사이 긴장감이 맴도는 상황. 겉은 인간이지만 속은 외계인인 4인방은 ‘인간이 우리 못 건들게 위협해야 해’라는 일념 하에 지구에서 가장 무서운 것들을 소환한다. 몸짓으로. 상인(정순원)이 폴짝 뛰며 “미사~일”을 외치더니 광대(이하늬)가 곧이어 입으로 바람 소리를 한껏 내며 “핵!”을 외친다. 4인방 중 ‘기존쎄’를 맡고 있는 주모(황미영)도 질 수 없다. 두 눈을 반짝이며 “사슴~”을 외치더니 ‘내가 사슴이야, 안 무서워?’라는 천연덕스러운 독백까지 날린다. 이에 우두머리 백정(김태훈)도 가장 무서운 무기를 소환하며 화룡점정을 찍는데, 바로 지구에서 아무도 못 건든다는 BTS. 무반주에 스냅 치며 둠칫둠칫 춤을 추는데, 김태훈의 훈훈한 비율의 신장과 그동안 몰랐던 춤 실력이 시너지를 내 이상하게 멋져 보여 더 웃기다. 결국 참다못한 인간들끼리 달려드는 상황에서도 이 ‘무기 따라 하기’에 열중하는 모습에 박수가 절로 난다. 이 얼렁뚱땅 코미디 장면을 대본에서 보고 미사일, 핵, 사슴, BTS를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 4인방 배우들을 떠올리면 약간 감격스럽기도 하다. 마음 같아선 <닭강정>의 모든 배우들에게 노고를 치하하고 싶은데, 그중에서도 이 4인방의 ‘미친’ 연기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말맛’ <닭강정>에서 ‘몸개그맛’의 향을 더해주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