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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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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최고의 영화로 두루 손꼽히는 미개봉작들

씨네플레이

2025년도 벌써 1달이 지나가는 와중, 작년 유수의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서 빈번하게 이름을 올린 영화들 가운데 한국 극장가에 소개되지 않은 여덟 작품을 소개한다.

 


미세리코르디아

Miséricorde

알랭 기로디

 

〈미세리코르디아〉
〈미세리코르디아〉

프랑스 감독 알랭 기로디는 테러와 인종차별 문제를 아우른 코미디 <노바디즈 히어로>(2022)에 이어,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생 마르시알을 배경으로 보다 원초적인 관계를 그린 스릴러 <미세리코르디아>를 발표해 평단은 물론 영화 깨나 찍는다는 감독들의 지지를 받았다. 제빵사 제레미(펠릭스 키질)는 전 상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와 여러 사람들을 재회하지만 상사의 아들이자 옛 친구 뱅상(장밥티스트 뒤랑)은 그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제레미와 뱅상의 관계가 파국에 치닫게 되고 마을의 신부(자크 드블레)가 개입하면서 영화는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음습하게 커져가는 긴장감 끝에 마주하게 되는 누군가의 순애보는 경악할 만큼 도발적이고, 숭고하다. 기로디는 2013년 <호수의 이방인>에 이어 <미세리코르디아>로 다시 한번 프랑스의 유력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 베스트 리스트 1위를 차지했다.

 


2번 배심원

Juror #2

클린트 이스트우드

 

〈2번 배심원〉
〈2번 배심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40번째 연출작이자 아마도 마지막 연출작이 될 거라고 알려진 <2번 배심원>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나라는 매우 드물었다. 1976년 작 <무법자 조시 웰즈>부터 이스트우드와 연을 맺어온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의 현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는 근래 이스트우드 영화가 연달아 흥행에 실패했다는 점을 들어 <2번 배심원>을 OTT로만 공개하려다가 반응이 좋자 미국에서도 제한된 상영관에서만 선보였다. 우연히 한 살인사건의 배심원으로 참여한 저스틴(니콜라스 홀트)은 이 사건의 가해자가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뇌한다. 마지막 작품임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그동안 꾸준히 천착해온, 비극적인 사건의 진실 앞에 선 인물의 요동치는 심정을 담담히 따라가는 연출은 다시 한번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노 아더 랜드

لا أرض أخرى

배즐 아드라, 함단 발랄,

유발 아브라함, 레이첼 졸

 

〈노 아더 랜드〉
〈노 아더 랜드〉

<노 아더 랜드>는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마을 마사페르 야타가 파괴되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두 팔레스타인인(배즐 아드라, 함단 발랄)과 두 이스라엘인(유발 아브라함, 레이첼 졸)이 공동 연출해,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 이후 계속된 이스라엘의 공격을 견뎌온 마사페르 야타 사람들의 생활상을 1인칭 시점으로 담은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는 팔레스타인 활동가 배즐과 자국의 폭력을 세상에 알리려는 이스라엘인 저널리스트 유발이 연대하면서도 태생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과정 또한 볼 수 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록한 <마리우폴에서의 20일>(2003)에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같은 부문에 <노 아더 랜드>를 후보에 올렸다.

 


쿠데타의 사운드트랙

Soundtrack to a Coup d'Etat

요한 흐리몬프러

 

〈쿠데타의 사운드트랙〉
〈쿠데타의 사운드트랙〉

<노 아더 랜드>와 더불어 올해 오스카 장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오른 또 다른 작품. 벨기에 아티스트 요한 흐리몬프러의 <쿠테타의 사운드트랙>은 무수한 아카이브 영상들을 짜깁기해 60년대 미국이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한 명 재즈 아티스트들을 친선 대사로서 콩고에 보낸 배경에는 콩고의 초대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를 암살하려는 CIA의 음모가 있었음을 폭로한다. 냉전시대의 정치 사건들을 펼쳐 보이는 푸티지들 사이로 디지 길레스피, 듀크 엘링턴, 맥스 로치, 애비 링컨, 니나 시몬 등 60대 미국을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의 명곡들이 멋들어진 그래픽과 함께 곳곳에 배치됐다. 머리와 가슴, 눈과 귀를 두루 자극하는 작품이다.

 


하드 트루스

Hard Truths

마이크 리

 

〈하드 트루스〉
〈하드 트루스〉

영국의 거장 마이크 리가 '피털루 학살'을 영화화 한 <피털루>(2018)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새 영화. 본래 2020년 2월에 촬영을 시작하려 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이상 지연되다가 작년 9월 토론토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우울과 분노를 시달리며 사소한 것에도 길길이 날뛸 준비가 되어 있는 팬지(마리안느 장밥티스트)가 성격 좋은 동생 샹텔(미셸 오스틴)과 함께 지내며 공감받는 이야기. 마이크 리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비밀과 거짓말>(1996)에 출연했던 흑인 배우 마리안느 장밥티스트와 미셸 오스틴이 디콘 자매 역으로 열연했다.

 


고독의 오후

Tardes de soledad

알베르트 세라

 

〈고독의 오후〉
〈고독의 오후〉

걸작 <퍼시픽션>으로 2022년 명망 있는 '올해의 영화' 리스트를 휩쓴 알베르트 세라는 작년 다큐멘터리 <고독의 오후>를 발표했다.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Andrés Roca Rey)와 동료들의 14개 경기를 따라가며 미학적인 측면에서 투우를 탐구하는 작품. 근작들의 촬영/편집 파트너인 아르투르 토트 푸졸과 함께 3년간 찍고, 2년간 편집해서 완성된 결과물이라고. 단순히 공간을 꾸미기보다 아예 세상을 다시 창조하듯이 영화를 만드는 세라의 솜씨가 투우의 세계를 어떻게 담아냈을까. 다분히 여성스러운 의상을 입고 경기장에 서서 매 순간마다 죽음의 위협을 마주하며 마초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안드레스 로카 레이의 광적인 카리스마가 아주 인상적이라고.

 


니클의 소년들

Nickel Boys

라멜 로스

 

〈니클의 소년들〉
〈니클의 소년들〉

앨러배마 헤일 카운티에 사는 흑인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헤일 카운티 오늘 아침, 오늘 저녁>(Hale County This Morning, This Evening, 2018)로 데뷔해 오스카와 에미 어워드 후보에 올랐던 감독 라멜 로스가 극영화에 도전했다. 202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콜슨 화이트헤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니클의 소년들>은 주로 영미권 평자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실제 학대로 악명 높았던 플로리다 소년원에서 영감을 받아, 1960년대 플로리다 소년원에 수감된 흑인 소년 엘우드(이선 헤리스, Ethan Herisse)와 터너(브랜든 윌슨)가 폭력을 견뎌내는 과정을 1인칭 시점과 1.33:1 화면비로 연출했다. <서브스턴스>, <아노라>, <듄: 파트 2>, <브루탈리스트> 등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두고 경합을 벌이게 됐다.

 


헨리 폰다를 대통령으로

Henry Fonda for President

알렉산더 호워스

 

〈헨리 폰다를 대통령으로〉
〈헨리 폰다를 대통령으로〉

<헨리 폰다를 대통령으로>는 영화감독들의 신망이 두터운 비엔나 국제영화제와 오스트리아 영화박물관의 디렉터를 역임한 알렉산더 호워스가 만든 다큐멘터리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할리우드 고전기를 대표하는 명배우 헨리 폰다의 궤적을 따라가며 영화를 넘어, 17세기 미국에서 배우 출신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미국의 역사를 비판한다. '미국의 양심'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던 헨리 폰다의 다층적인 커리어를 세세히 엿볼 수 있는 푸티지들을 넋 놓고 따라가는 와중에 헨리 폰다가 대통령인 가상의 미국을 상상케 한다. 에드가 G. 울머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을 만든 마이클 팜 감독이 촬영, 편집, 사운드에 관여해 만듦새 또한 상당하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