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영화제 레드카펫 선 민규동 감독 [수필름 제공]](/_next/image?url=https%3A%2F%2Fcineplay-cms.s3.amazonaws.com%2Farticle-images%2F202502%2F17261_204410_1053.jpg&w=2560&q=75)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신작 영화 〈파과〉가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작품은 장르 영화를 소개하는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에 초청돼 지난 16일 밤(현지시간) 처음으로 상영됐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허스토리>(2018) 등으로 잘 알려진 민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삶의 의지와 성장, 치유를 다룬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고자 한다고 밝혔다.
민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맞닥뜨릴 때 다시 삶의 의지를 확인하는 이야기가 담겼다"며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르 영화로서 쾌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영화에서 액션 배우로 변신한 대배우 이혜영의 새로운 연기 도전에 주목해 달라고 전했다.
연기 경력 45년 차인 이혜영은 이번 작품에서 60대 여성 킬러 조각 역을 맡아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그간 드라마에서는 주로 사모님 역할을 맡았던 그는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며 영화계에서도 활동해왔다. 민 감독은 "이혜영은 카리스마 있는 역할로 잘 알려져 있지만 무너져 가는 노년의 이미지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고 언급하며, "조각이라는 캐릭터와 그녀의 만남이 신선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파과〉 [NEW 제공]](/_next/image?url=https%3A%2F%2Fcineplay-cms.s3.amazonaws.com%2Farticle-images%2F202502%2F17261_204411_1119.jpg&w=2560&q=75)
〈파과〉는 1975년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한 식당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식모살이를 전전하던 어린 조각(역 신시아)은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본 식당 주인 류(역 김무열)에게 킬러 수업을 받는다. 조각은 청부 살인을 하면서도 단순히 돈만 좇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좀먹는 인간들을 박멸한다는 신성한 명분 아래 행동한다. 그녀가 소속된 회사 이름인 ‘신성방역’ 또한 이러한 사명을 반영하고 있다.
수십 년간 실수 없는 완벽한 일 처리로 '신성방역'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던 킬러 조각이 영화 〈파과〉에서 중심에 선다. 환갑을 넘긴 그는 칼끝에 감정을 싣지 않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지켜왔으나, 최근 들어 이 같은 규칙을 어기며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동시에 회사는 사회를 깨끗이 한다는 오랜 신념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조각의 세계는 야망 가득한 젊은 킬러 투우(김성철)의 등장으로 균열이 생긴다. 투우는 회사 경영진과 함께 조각에게 압박을 가하며 그의 자리를 위협한다. 일반적인 기업이었다면 이는 은퇴를 요구하는 신호로 간주될 수 있겠지만, 투우가 이곳에 합류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이야기는 결국 조각과 투우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대결로 치닫는다.
본 작품은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 「파과」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제목 '파과(破果)'는 흠집 난 과실이라는 뜻으로, 영화에서는 늙어버린 킬러인 조각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쓰였다. 동시에 '파과(破瓜)'라는 표현은 전통적으로 여성 나이 16세를 의미하기도 해 다층적 의미를 담고 있다.
![〈파과〉 해외 포스터 [NEW 제공]](/_next/image?url=https%3A%2F%2Fcineplay-cms.s3.amazonaws.com%2Farticle-images%2F202502%2F17261_204412_1154.jpg&w=2560&q=75)
민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이 소설에 기반해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소설 자체가 심리 묘사와 문체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 이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전하며, "원작에서 멀어졌다 다시 충실하게 돌아오는 과정에서 액션 누아르 장르적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장르 형식을 통해 인물들의 주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민 감독은 2009년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가 음식과 환경을 다룬 작품으로 평가받아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컬리너리 시네마 섹션에 초청받으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던 트리샤 터틀 집행위원장이 그의 새로운 작품 〈파과〉의 트레일러를 보고 완성본 출품을 요청하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민 감독은 사극에서 SF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섬세한 심리 묘사와 미장센으로 꾸준히 호평을 받아왔다. 김태용 감독과 공동 연출한 데뷔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는 전편의 상업적 성공과 달리 "안 무서운 공포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만의 독창적인 접근 방식이 돋보였던 영화였다.
그는 당시 연출에 대해 "전편이 흥행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연출해도 된다는 제안을 받았다.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에서 영감을 얻어 아시아 10대 여성들이 성인 사회로 진입하며 겪는 성장통을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한, 민 감독은 "공포는 단지 형식일 뿐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익숙한 정서를 낯선 형식에 접목시키는 작업에서 시작해 이후에도 새로운 장르 속에서 자신만의 주제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