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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봉1, 봉2 … ‘봉8’ 〈미키 17〉이 탄생하기까지, 봉준호 감독 “2시간 동안 폰 안 보는, 정신없이 재밌는 영화 만드는 게 목표”

김지연기자
〈미키 17〉 포스터
〈미키 17〉 포스터

 

어느덧 여덟 번째 장편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키 17>은 ‘봉8’이다. ‘봉7’ <기생충>을 기점으로 확 달라진 글로벌 위상을 등에 업고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봉8’ <미키 17>을 향한 전 세계 관객들의 기대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예산과 글로벌 인지도를 얻고도 봉준호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설국열차>(2013) <옥자>(2017)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세 번째 할리우드 프로젝트 <미키 17>은 단지 우주가 배경일 뿐인 부조리극이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기생충>까지, 봉 감독이 천착해 온 관심사는 줄곧 모순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순된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치 동일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지녔지만 성격이 미묘하게 다른 ‘미키 17’과 ‘미키 18’처럼,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작품들 역시 동일한 코어를 바탕으로 장르영화의 외피를 입고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 19일 여의도 모처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나 ‘봉8’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키 17〉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기생충>(2019) 이후 약 6년 만에 차기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기생충>의 성공으로 많은 작품 연출의 제안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미키 17>의 연출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생충>을 작업할 때, 이미 두 가지 프로젝트를 더 준비하고 있었어요. 2018년 말, 2019년 초에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했고, 그 프로젝트를 지금까지 6년째 준비 중인데요. 또 하나는 그때 영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사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기생충> 오스카 캠페인을 하다가 런던에 갔는데, 거기서 실제 사건과 관련된 분들을 만나고 나서 윤리적인 딜레마에 봉착했어요. 이분들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그래서 제 안의 모순점이 느껴지면서 접게 됐어요. 그래서 마음이 허무했던 차에, 저와 <옥자>를 같이 했던 제작사 플랜 비 엔터테인먼트에서 「미키 7」이라는 소설을 보내줬어요. 심지어는 출간되기 전 상태였는데, 콘셉트가 흥미로워서 워너브러더스에서 판권을 산 소설이라는 거예요. 워너브러더스에서는 이 소설이 독특하니까, 독특한 영화를 많이 제작한 플랜 비 엔터테인먼트에 보낸 거죠. 흘러흘러서 저에게 왔는데, 저도 읽고 매혹이 된 거죠. 콘셉트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죽고 프린트되고, 또 죽고 프린트되고. 산업재해 전문 노동자도 아니고. 인간적인 얘기를 다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워킹 클래스, 노동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게 2020년의 상황이고, 2021년도에 시나리오를 짰어요. 되게 중요한 대목입니다. (웃음) 21년도에 쓴 시나리오대로 찍었어요. 미국에서도 사건 이후 재촬영을 해서 넣은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서. (<미키 17>에는 트럼프 피습 사건을 연상시키는 시퀀스가 등장하는데, 공교롭게도 시나리오는 사건 이전에 쓰였다.)

 

<기생충>이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큰 성취를 거둔 나머지, 차기작을 준비할 때 그만큼 부담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미키 17>의 개봉을 앞둔 소감이 어떠세요.

 

늘 부담스럽죠. 늘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고. 지금이 ‘봉8’이거든요. <기생충>이 ‘봉7’, <옥자>가 ‘봉6’.. 저도 한 번 찍을 때마다 온몸이 갈려 나가듯 영화를 찍으니까 매번 죽었다 다시 깨어나는 느낌인데, 미키도 영화에서 그러잖아요. 자기는 매번 죽어도, 죽는 게 무섭고 싫다고. 저도 비슷해요. 이번이 여덟 번째인데도, 초조하면서도 신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복합적이죠.

 

〈미키 17〉
〈미키 17〉

 

<미키 17>을 관람하니, ‘봉준호 감독이 하고 싶은 것 다 했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 이번 영화를 연출하셨는데,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규모가 큰 영화를 연출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누가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규모의 예산이건 예산이 정해진 순간 그 예산의 10%가 더 목마르다’. 예를 들면 100억짜리 영화면 ‘아 이게 110억만 됐어도 다 할 수 있어!’ 그러는 거죠. 그런데 정확히 <미키 17>은 118 밀리언 불, 그러니까 1억 1800만 달러,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약 1700억이더라고요. 그런데 처음에 워너브러더스가 목표로 잡았던 액수는 1억 2000만 달러였는데, 자랑하자면 스토리보드대로 정확히 찍고 재촬영도 없었고, 모든 걸 일정 안에, 준비된 대로 찍었기 때문에 심지어 200만 달러를 남겼어요.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는 일체의 타협이 없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다 했고, 스튜디오에서 그걸 존중해줬고, 원래 계약 자체가 디렉터스 파이널 컷(최종 편집권) 계약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규모가 크건 작건, 제가 준비한 대로 찍는 방식은 이전 영화와의 큰 차이는 못 느꼈어요. 이전에 제일 큰 작품이 <옥자>였는데, 저는 하던 대로 한 느낌이고. 그리고 저의 전작들도 업계에서 대부분 잘 알려져서, ‘저놈은 맨날 이상한 것 찍는다’ 이런 자포자기 심정이 있지 않았을까. (웃음) 좋은 의미에서. 그래서 저는 일하기에 편한 면이 있었죠.

 

〈미키 17〉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SF 장르를 꾸준히 만드는 한국 감독이 드문 편인데, 봉준호 감독님은 <괴물>까지 포함하면 총 4편의 SF 영화를 연출하셨습니다. 유난히 SF 장르에 대한 애정이 큰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SF 문고를 많이 봤었고, 어릴 때 SF를 좋아했던 이유는 환상적이고 신기해서였는데, 어른이 되니 우주건, 미래건, 외계이건 디스토피아건 간에 그것들을 통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반추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미키 17>의 크리퍼도 그렇지만, 크리처나 몬스터에 인간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 인간은 얼마나 한심한가를 볼 수 있게 되니까요. <미키 17>도 2054년의 미래를 묘사하고 저 멀리 우주로 가지만, 여전히 우주에 나가봤자, 미래에 가봤자 여전히 인간들은 찌질하고,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그런 반SF적인 것 때문에 오히려 SF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미키 17>도 SF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의 인간군상은 찌질하고, 멍청하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정겹기도 하고. <미키 17>에서도 ‘행성 간 송금 수수료’에 대해 얘기하고 그러잖아요. 또, 저는 영어 대사 영화를 할 때에는 왠지 더 SF라는 장르에 기대고 싶어 하기도 해요. 이안(리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1997)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대만 출신 감독이 <아이스 스톰>이라는 1970년대 미국인 가정의 가족 드라마를 찍었는데, 저는 그게 되게 놀라웠어요. 저는 그런 걸 못 할 것 같거든요. 만약 한국의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한다면, 저의 형이나 부모님이 살았던 시기니까, 그 냄새나 공기, 뉘앙스를 아니까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SF는 다소 추상화되거나 직설적이어도 되고, 미래라는 틀에 묶이면서 국적이나 로컬리티가 희석되기도 하고. 그래서 SF가 저에게는 기댈 구석이거든요.

 

〈미키 17〉
〈미키 17〉

 

<미키 17>에는 감독님이 전작에서부터 줄곧 다뤘던 문제의식들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계급론, 자본주의의 폐해부터 식민주의, 생태주의까지. <미키 17>의 다양한 문제의식 중, 어떤 메시지에 가장 방점을 찍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2시간 동안 정신없이 재미있게 보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저의 목표거든요. 절대 핸드폰을 안 꺼내게끔. 심지어 저는 다른 영화를 극장에서 보다가, 유튜브를 보고 계신 분을 봤어요. 저도 유튜브를 좋아하긴 하지만, 만약 제 영화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되게 큰 상처를 입을 것 같아요. 그래서 2시간 동안 관객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캐릭터에 막 정신없이 끌려갔으면 좋겠거든요. 그래서 메시지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지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는 않고요. 재미와 아름다움을 위해서 만드는데, 대신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니까, 집에 돌아갔을 때, 집에 돌아와서 자려고 누웠을 때, 어떤 장면이나 대사가 떠오른다거나, 내가 겪었던 일과 비슷하다거나, 뉴스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진다거나 하며 가랑비처럼 젖어 드는 게 메시지라고 생각하고요. 메시지나 주제를 코앞에서 포크에 찍어서 들이미는 건 되게 싫고요. 장르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장르적 흥분을 같이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큽니다.

 

 

〈미키 17〉 포스터
〈미키 17〉 포스터

 

 

<미키 17>은 SF 장르의 영화지만, 미키라는 노동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봉 감독님은 <기생충> 등으로 여러 번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오셨는데요. 이번에도 노동자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현대사회의 노동에 대한 생각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인간 프린팅’이라는 게 굉장히 SF적인 콘셉트인 것 같지만, 사실은 되게 현실적이고 잔혹한 콘셉트예요. 화력발전소에서 안타깝게 돌아가신 젊은 청년(2018 태안 화력발전소 끼임 사고), 지하철 스크린 도어 사고(2016년 구의역 비정규직 노동자 사고 등), 최근의 제빵 기계 사고(2022년 SPC 평택 제빵공장 사고)… 그런 것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있어요. 그리고 아마 지금 나열했던 사건들의 그 자리에 또 다른 분들이 일하고 있을 거예요. 누군가가 퇴장하게 되면, 새로운 누군가가 오는 거죠. 영화 속에서는 미키가 혼자 그걸 계속하고, 반복적으로 리프린팅 되면서. 현실에서는 그 일자리와 시스템은 유지되고 있고, 인간은 계속 교체되고 있고. 김군 뒤에는 박군이 있고, 박군 뒤에는 윤양이 있고. 그런 게 SF 영화를 찍는 의미인 것 같아요. 사실 현실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니까요.

 

〈미키 17〉
〈미키 17〉

 

<미키 17>은 원작 소설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캐릭터가 그런데요.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정치인 마셜은 원작에도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성격이 판이하게 바뀌었고, 그의 아내 일파(토니 콜렛)는 원작에 없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캐릭터에 변화를 준 이유가 궁금합니다.

 

독재자가 커플로 등장했을 때 나오는 시너지, 블랙코미디의 느낌이 있어서 독재자를 커플로 만들고 싶었어요. 티모(스티븐 연)와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캐릭터는 많이 바뀌었죠. 원작에서 미키는 역사학자인데, 저는 <미키 17>의 미키와 티모를 밑바닥 세계의 청년들처럼 바꾸고 싶었고요. 나샤(나오미 애키)는 비교적 원작과 유사한 캐릭터고요. 티모는 독일에서 사기꾼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영화 속 티모가 사기꾼 같은 캐릭터이기도 하잖아요. 티모는 미키의 정반대 느낌이고. 미키는 매번 손해 보고도 화를 못 내는 착해 빠진 캐릭터인데, 그 반대편에 약삭빠르고 자기 챙길 건 다 챙기는데 미워할 수 없는 느낌도 있고. 티모는 현실적이고 약삭빠르다 보니까 어리숙한 미키를 데리고 다니고. 그런 묘한 관계라서, 티모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미키 17〉
〈미키 17〉

 

티모와 미키는 지구에서 마카롱 가게를 하다 망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데요. 전작 <기생충>에서도 대만 카스텔라 가게를 하다가 망한 가족의 이야기가 나오고요. 대만 카스텔라도 그렇고, 마카롱 가게도 그렇고 외국에서 온 음식이긴 하지만 굉장히 한국적인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 글로벌 관객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하필 ‘마카롱’ 가게를 했다는 설정을 하신 이유는요.

 

자영업의 흥망성쇠와 관련한 여러 희비극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기생충>의 대만 카스텔라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웃픈 사연’이기도 하고. <미키 17>에는 “마카롱이 언젠간 햄버거보다 더 잘될 거야”라는 대사가 나오죠. 제가 마카롱을 되게 좋아해요. 마카롱, 다쿠아즈, 밀푀유…. 프랑스 식당에 가면 디저트가 참 화려합니다. 그런데 <미키 17>에서 일파가 ‘소스’ 얘기를 하는 것처럼, 그런 허세(프랑스 디저트)를 부릴 것 같은 인물은 마셜 부부죠. 그런데 미키와 티모 버디에게는 마카롱이 왠지 안 어울리잖아요. 거친 뒷골목을 뛰어다니고, 무서운 사채 아저씨에게 쫓기는데, ‘마카롱은 죄가 아니다’(Macarons are not a sin)라는 문구가 써진 티셔츠를 입고 있고. 안 어울리는 것들을 엮어놓는 것을 제가 워낙 좋아하다 보니까, 그런 설정을 했습니다.

 

〈미키 17〉 예고편 캡처
〈미키 17〉 예고편 캡처

 

<미키 17> 속 ‘크리퍼’라는 크리처는 마냥 징그럽게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면 ‘크로아상’ 같기도 하고, 동글동글하고 귀엽다는 느낌도 듭니다. 크리처 디자인을 하며 고민했던 부분이 궁금합니다.

 

원작은 크리퍼가 지네처럼 생겼다고 묘사했어요. 그런데 저는 동글동글하게 묘사하고 싶었어요. <괴물>과 <옥자>를 함께 했던 장희철 디자이너와 이번에 세 번째로 함께 했는데, 디자인의 출발점은 크로아상 빵이었어요. 크로아상을 자세히 보시면, 되게 움직일 것처럼 생겼거든요. 주름이 잡혀 있고, 앞으로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있고. 그리고 또 하나의 출발점은 아르마딜로라는 동물인데, 아르마딜로는 겉에 갑옷 같은 게 있고, 사람이 건드리거나 천적이 오면 동그랗게 공처럼 웅크려요. 또, <미키 17>에는 마마 크리퍼, 주니어 크리퍼, 베이비 크리퍼가 등장하는데요. 베이비 크리퍼는 강아지처럼 움직이고 귀여움을 담당하고, 주니어 크리퍼가 액션을 담당하고. 마마 크리퍼는 엄청난 카리스마의 정치인 느낌, 여성 4선 위원 같은 느낌. 마마 크리퍼의 위엄을 묘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미키 17〉
〈미키 17〉

 

봉 감독님의 이전 작품들에 가족애, 인류애, 동물에 대한 사랑이 나왔다면, <미키 17>에서는 처음으로 남녀 간의 로맨스가 나옵니다. <미키 17>에서는 미키와 나샤의 로맨스가 이야기의 큰 동력으로 작용하는데요. 사랑의 힘에 대해서 새삼 깨달으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지금이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마더> 찍을 때는 오히려 걱정이 많았어요. 그때 제가 만 39세였거든요. 그런데 <마더>는 더 원숙한, 내가 한 62세쯤 됐을 때 찍어야 하는 스토리 아닐까, 내가 시나리오를 썼지만.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면 옆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저는 그렇게 되면 그랜마더(grandmother, 할머니)가 돼요”라는 말씀을 하셨단 말이죠. <미키 17>의 미키와 나샤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기둥, 척추와 같은 거고, 원작 소설과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그 사랑만큼은 바꾸지 않고 싶었어요. 소설에서도 저를 눈물짓게 만든 건 나샤가 미키를 끝까지 지켜주려고 하는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핵심이 결국 이거구나, 생각했고. 잔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샤의 사랑으로 인해) 미키라는 한 청년이 파괴되지 않잖아요. 그게 정말 영화에서 제가 관객과 나누고 싶었던 부분이었고, 과거 영화 속 인물을 제가 가혹하게, 심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고. 그리고 나샤는 미키에게 크리퍼에 대한 완전히 다른 성찰을 하게 해줘요. “크리퍼가 너를 살렸어”라고 하면서. 그 대사를 하는 장면을 굉장히 공들여서 찍었어요. 그리고 나샤는 영화 속 악당인 독재자들과 엄청난 에너지로 맞서 싸워요. 런던 시사할 때는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박수를 치더라고요.

 

〈미키 17〉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키 17〉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기생충>을 함께 하셨던 바른손이엔에이 곽신애 대표는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보다도 일단 착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봐도, 인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 통찰을 영화화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본인의 선함이 실제로 영화에 어떻게 녹아든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화를 못 만든다는 얘기인가요? (웃음) 해외 영화제에서도 전공이 사회학이니까 사회적인 담론이나 맥락에 대해서 통찰을 하냐는 질문을 받는데요. 그럴 때마다 제가 대답하는 건, 실제로 저는 사회과학 책이나 철학의 내용을 잘 흡수하고 소화하지 못하고, 저의 머리가 회전하는 쪽은 그런 쪽이 아닌 것 같다는 거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리려고 했고, 거대 담론과 같은 걸 잘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그런 통찰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대신 자잘한 것, 디테일, 구석진 코너에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그런 걸 파들어가다 보면 그 동굴이 점점 넓어지는 경향은 있어요. <미키 17>도 미키 중심으로 생각했어요. 원작 소설은 훨씬 크고 깊은 철학적인 주제들의 덩어리를 끌고 가요. 재출력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물질과 반물질에 대한 것들 등. 저는 그런 접근 방식이라기보다는, 내가 출력된 나의 몸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죽었는데, 다시 눈을 뜨면 내가 출력기로 나오고 있다면 어떤 기분을 느낄까. 그 상태로 나온다면 나의 친구는 나를 반겨줄까. 그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질문들이 있잖아요. 극한 직업, 죽을 법한 일의 미션에 계속 투입되고, 그럴 때마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싫은데 그래도 죽어야만 하고, 또다시 출력되는 입장에서, 이 사람에게 피부에 와닿는 그 느낌은 뭘까.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이 사회가 미키를 어떻게 대하는가. 마치 조선시대의 대장장이처럼, 되게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을 하는데도 오히려 천시하고 박대하잖아요. 미키에게 “죽을 때는 어떤 기분이야?’를 묻고. 그런데 크리퍼 커뮤니티는 미키가 속한 커뮤니티의 정 반대죠. 이쪽 커뮤니티는 미키를 반복적으로 죽이는 커뮤니티라면, 크리퍼 커뮤니티는 모든 개체가 베이비 크리퍼를 구하려고 하니까.


※ 아래에는 <미키 17>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키 17〉
〈미키 17〉

 

원작과는 달라진 결말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미키 18은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데요. 그런데 그 와중, 미키 17은 일파 마셜과 케네스 마셜이 나오는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결말을 어떤 의도로 맺으려고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악몽을 공들여서 찍었어요. 사실 <미키 17>은 해피엔딩이긴 한데, 그에 못지않게 (관객들에게) 악몽의 잔상이 남길 바랬고요. 언제든지 그런 악몽의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지금 현실이고, 천만다행인 건 미키는 그 악몽을 극복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미키 17>의 숨겨진 장르는 ‘미키 반스의 성장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미키 17’이라는 타이틀이, 그다음에는 ‘미키 18’이, 마지막에는 다시 ‘미키 반스’라는 타이틀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미키 17>은 미키의 이름을 되찾는 여정인데, 그래서 숫자도 꼭 ‘18’로 한 거예요. 많이 죽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많이 죽이려고만 했으면 ‘미키 87’ ‘미키 124’로 했겠죠. 그런데 17세에서 18세는 딱 어른이 되는 숫자잖아요. 그래서 17과 18의 경계선을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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