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미담 제조기’로 불리는 배우 강하늘이 영화 <야당>에서 선한 이미지를 싹 지운 채 돌아왔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대한민국 마약판 생태계의 정점에 올라서 수사기관과 마약사범들을 쥐락펴락하는 브로커 야당 이강수 역을 맡았다. 강하늘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제 이익을 채우는 이강수를 연기하며, 여느 때보다 인물의 복잡성을 풀어내기 위해 고심했다. 강하늘 배우를 만나 작품과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점에 끌려서 참여하게 되셨어요?
아무래도 제일 매력적인 부분은 ‘야당’이라는 소재인 것 같아요. 사실 저도 모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많은 분도 아마 모르셨을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존재가 없는 건 줄 알았어요. 영화적 허구로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이건 너무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거예요. 정말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소재에 관해서 연구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배우님도 시나리오 외적으로 이 소재에 관한 조사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사실상 야당이라는 분들에 대한 자료는 구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만날 수가 없거든요. 야당 검색하면 야당, 여당만 나오지. 그거에 대해서는 검색할 수가 없어서 감독님이 얘기해 주시는 말씀을 들었죠. 그리고 감독님이 그분들을 인터뷰한 영상들이 있어요. 녹음하신 파일도 있고요. 이런 걸 받아서 연구했어요. 근데 대본에 야당 이강수가 하는 일들이 너무 자세하게 적혀 있어서, 대본만 다 읽어도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것 같았어요. 그 정도로 감독님이 워낙 고민을 많이 하고 쓰신 대본이다 보니까 그것만 읽어도 야당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감독님께서) 보내주신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진짜 생태계 정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엄청 자신만만했어요.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그분에게 “근데 그런 일을 하다가 잡히거나 그러면 어떻게 해요?”라고 질문을 했어요. 근데 그분이 “아니 나는 안 잡힌다. 나는 잡힐 수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약간 이런 스탠스예요. 그리고 자신을 잡아도 처벌을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야당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자신만만하고 뭔가 가득 차 있는, ‘내가 왕이야’ 같은 느낌을 영화에 녹이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영화의 초반 장면들이 그런 것들을 신경 써서 넣은 장면이에요.
또 자료 조사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이 있을까요?
이강수가 ‘허머’라는 엄청 큰 차를 타고 다니거든요. 근데 그것도 고증이 된 거예요. 야당 분들이 제일 많이 타는 게 허머 차래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인터뷰 영상 속 그분들에게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과시하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차로도 과시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허머’랑 ‘지바겐’ 이 두 차량을 가장 많이 탄대요. 실제로 보면 이 차량들이 차선 하나를 꽉 채워 다니거든요. 탱크 같은 거죠.

캐릭터의 외형적인 면은 어떻게 구성해 나갔어요?
제 의상 중 안에 입은 하늘하늘한 셔츠 있죠. 실크 소재로 만든 것 같은 셔츠였거든요. 처음 의상 콘셉트가 그래서 그렇게 입고 나갔는데, 뭔가 제가 머릿속으로 그린 야당의 이미지라기보다 그냥 조폭 같은 느낌인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이랑 의상 실장님이랑 얘기를 해서 옷을 한번 바꿨죠. 지금보다 조금 더 날티나는 걸로 바꾸자고 말했어요. 조금 더 자신만만하게 보이려면 딱 붙는 민소매 같은 걸 입으면 어떠냐고 의견을 말하고, 입어봤더니 감독님과 의상 실장님이 다 좋아해 주셔서 그렇게 픽스를 했죠.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 강하늘 씨가 주도해서 바뀌게 된 부분이 또 있으세요?
제가 주도했다기보다는 그냥 의견을 낸 부분은 있어요. 원래 대본에는 없었는데, 영화 중후반부에 이강수가 말 더듬는 거요. 이강수가 약 후유증을 겪는 콘셉트로 넣은 거였어요. 이 친구가 약 중독을 이겨내고 나서 예전 그대로 돌아와 버리면 조금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찾아보니 약 후유증이 엄청 많더라고요. 또 다행이었던 것은 후유증이 특정된 게 아니고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떤 걸 해도 정당성이 있긴 하겠다고 생각했죠.
말 더듬는 건 기본이고, 발 저는 거, 손 떠는 거 등 되게 많았어요. 근데 제가 후반부에 액션신을 해야 해서 다리를 절거나 손을 떨면 액션신을 못 찍으니까 그런 건 안 하고 말 더듬는 걸로 갔죠. 감독님이 처음 얘기만 들었을 때는 좀 걱정하시더니, 제가 하는 거 몇 번 보시고는 괜찮은 것 같다고 하셔서 넣게 되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이강수 캐릭터를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인 인물”이라고 말씀하시고, 영화에서 극적인 변화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잖아요. 이강수 캐릭터를 연기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두면서 연기하신 부분은 무엇이었어요?
제일 중점을 둔 부분이 말씀하신 그 부분이에요. 어쨌든 관객분들은 이강수라는 인물을 어느 정도 따라와 주셔야 하는데 너무 악랄하게 보여서 비호감이 돼 버리면 따라올 감정이 안 생기고, 그렇다고 저는 야당 일을 하는 사람들을 정당화시켜서 선하게 보이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그 사이 경계선이 고민의 지점이었어요. 그래서 장면마다 조금 세다 싶으면 수위를 낮추기도 하고, 어떤 거는 제가 너무 크게 웃어서 착해 보이면 그렇지 않게 줄여보고, 약간 이런 식으로 톤을 맞춰가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야당>은 색이 강한 캐릭터들도 많고, 액션도 많아서 볼거리가 많은데요. 강하늘 씨가 <야당>의 관전 포인트를 꼽는다면 어떤 걸 말씀하고 싶으세요?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야당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대본을 읽지 않았으면 이 사람들을 평생 몰랐을 거예요. 그리고 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면 아마 많은 분이 모르셨겠죠. 그러니까 그것 자체가 관전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하면서도 관객분들한테 야당에 관해 설명해 주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거거든요.
원래 야당이라는 게 옛날에 소매치기하는 집단에 있던 말이었어요. 소매치기 집단이 우리나라에 여러 개 있었을 때, 다른 소매치기 집단을 없애려고 그 소매치기 집단의 약점과 몇몇 사람들을 수사 기관에 팔아넘긴 거예요. 근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그게 마약판으로 넘어오면서 수사기관이랑 약쟁이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야당이 된 거예요.

구관희(유해진) 검사에 대한 이강수의 감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셨어요? 둘의 관계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인물로서는 둘의 미래를 모르잖아요. 앞으로의 스토리를. 저도 제 주변에 저를 되게 좋아해 주는 동생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 동생들 중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동생이 있거든요. 구관희라는 인물에게 그런 동생처럼 느껴지고 싶었어요. 물론 뭐 일로 엮인 거긴 하지만 진짜 “형, 형” 하면서 따를 수 있는 진짜 친한 동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평소 미담이 많기로 유명하시잖아요. 근데 영화에서 욕설 연기를 진짜 잘하시더라고요. 혹시 그거를 따로 연습하신 건지 궁금해요.
그래요? 그런가? 잘 모르겠습니다. 따로 연습은 안 했고요. 따로 연습한 건 아니고 평상시에 욕을 그렇게 많이 하나 봐요. (웃음) 근데 저번에 <스트리밍> 인터뷰 때도 평소에 욕도 좀 하냐는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오해가 있으시다. 저 그렇게 착하지 않다. 그냥 즐겁게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지 막 욕도 안 하고 그러지 않는다’고 말했죠.
약에 취한 연기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연기를 할 때는 어떤 감정과 생각으로 연기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상상해서 할 수 있는 거와는 결이 달랐어요. 일단 저는 연기할 때 항상 제가 표현하는 게 먼저가 아니고요.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주시냐가 먼저거든요. 관객분들이 이 장면에서 느껴야 하는 것들이 제 연기의 목표 지점이에요. 예를 들어서 (유)해진 선배님이 (저에게) 화를 내야 하는 장면이면 관객분들도 볼 때 ‘저 정도면 화낼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행동과 연기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연기할 때 저의 시선은 약간 바깥에 있어요. 관객의 시선으로 봤을 때 당위성을 느끼게 하고 싶은 거죠.
약에 취한 연기를 하는 상황에서도 제가 고민한 포인트는 하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볼 때 (마약에 손대면) 진짜 저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만약에 마약을 진짜 하게 되면 저런 표정을 짓고, 저런 느낌이 될 것 같다고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감정 변화가 많은 캐릭터니까 특별히 어려웠거나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 있으셨어요?
많긴 한데 지금 생각난 장면은 마지막에 제가 건물 옥상에서 맞은편 건물에 있는 검사실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게 제가 실제로 검사실 안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안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 몰랐어요. 모르지만 연기를 해야 했던 거죠. 근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 신에서 저의 목표는 관객분들이 내 얼굴을 봤을 때 뭔가 통쾌하고 속 시원하고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버전으로 테이크를 많이 갔었어요. 그냥 웃는 버전이 있었고, 담배를 물고 웃는 버전이 있었고, 담배 뺀 버전이 있었고, 무표정한 버전이 있었어요. 검사실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거기에 맞춰 쓰시라고 이제 여러 가지 버전을 촬영해 둔 거죠. 그 신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이 테이크를 가장 많이 간 장면이었나요?
아니요. 테이크를 가장 많이 간 장면은 초반에 마약 중독자에게 콜라를 주면서 수사 협조 확인서 쓰는 장면이에요. 그게 영화상에서는 아마 컷이 나눠져서 편집이 됐을 텐데, 원래의 촬영 콘셉트는 롱테이크였어요. 그래서 그 신을 가장 많이 찍었던 것 같아요.

액션신이 많은 편인데 촬영할 때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차가 발을 짓밟고 가고, 불을 내고 이런 장면들이 있더라도 요즘 우리나라 촬영 현장이 너무 좋아져서요. 진짜 안전하고 전혀 다칠 게 없었어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연기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어요. 어느 정도 (위험한) 느낌이 있어야 그 느낌을 증폭시켜서 연기를 할 텐데 진짜 안전하게 찍어주세요. 그러다 보니까 온전히 진짜 연기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더 고민스러운 지점은 있죠.
그리고 수조에서 한 액션신도 되게 안전하게 잘 찍었어요. 근데 현실감 넘치게 보이고 싶어서 합을 맞춘다는 느낌보다는 큰 틀만 두고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찍었던 것 같아요.
허명행 무술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어요?
‘이래서 정말 많은 분들이 찾고 유명하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게, 액션 신이더라도 액션이 위주가 아니라 캐릭터를 먼저 봐주세요. 캐릭터와 이 캐릭터를 소화할 연기자의 능력을 기본으로 삼고 액션을 만들어 주시거든요. 캐릭터에 맞는 액팅을 만들어 주시니까 조금 색다른 느낌이긴 했어요. 주먹 한 번을 휘둘러도 강수라면 이렇게 안 휘두를 것 같고, 좀 더 허우적대면서 휘두를 것 같은 느낌, 그런 것들을 많이 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달에 영화 <스트리밍>이 개봉하고 근시일 내에 <야당>으로 다시 극장을 찾으셨어요. 또 출연하신 <오징어 게임> 시즌2 공개뿐만 아니라 ENA 드라마 <당신의 맛> 방영도 앞두고 있는데요. 굉장히 다작을 하고 계시는데,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으세요?
그냥 저라는 사람의 기질이 그런 것 같아요. ‘오늘 해야 될 일 그냥 하자’ 이렇게 생각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어지니까. ‘이 일을 안 하면 어차피 오늘 안 끝나잖아’ 약간 이런 느낌 있죠. 그렇게 그냥 하는 거죠. 작품도 제가 하기로 택했으니까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