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팩이 일냈다. 국내 CG/VFX 전문 기업 모팩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을 꺾고 미국에서 가장 흥행한 한국영화가 됐다. 제작사 모팩스튜디오에 따르면 <킹 오브 킹스>는 지난 주말 누적 수익 5,451만 달러(약 787억 원)를 달성해 <기생충>의 최종 매출액인 5,384만 달러(777억 원)를 넘어섰다. <킹 오브 킹스>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4월 11일 북미 개봉 직후 잭 블랙, 제이슨 모모아 주연 <마인크래프트 무비>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며 입소문이 났다. 개봉 첫 주에 북미 3,200개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한 <킹 오브 킹스>는 2주차를 맞아 스크린이 3,535개로 늘었다. 2주차를 맞아 2위에서 3위로 한 계단 내려앉았지만 10%대의 낮은 드롭율(관객수 감소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청신호를 켰다. 제작비가 총 360억 원으로 알려진 가운데 개봉 2주차에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성공했다.

장성호 모팩스튜디오 대표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킹 오브 킹스>는 찰스 디킨스의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를 바탕으로 예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현지 매체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버라이어티’는 “미국 부활절 연휴가 <킹 오브 킹스> 흥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고, ‘콜라이더’는 “로튼토마토에서 관객 평점 98%를 기록하는 등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 덕분”이라고 흥행 요인을 분석했다. 이에 힘입어 현재 북미를 포함해 영국과 호주는 물론 남미 여러 나라 등 50개국에서 개봉했으며, 연말까지 90여 개 국가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이런 놀라운 흥행에는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참여도 큰 역할을 했다. 영화 <듄>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오스카 아이삭이 예수 역을 맡았으며,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였던 피어스 브로스넌이 본디오 빌라도 역에 참여했다. 또한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마크 해밀이 헤롯 왕, <간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는 대배우 벤 킹슬리가 대제사장 가야바를 연기한다. 그 외에도 <오펜하이머>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의 케네스 브래너(찰스 디킨스)와 우마 서먼(캐서린 디킨스), <조조 래빗>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아역 배우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월터 디킨스)가 영화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디킨스 가족을 연기한다.

국내에서는 7월경 개봉 예정인 <킹 오브 킹스>는 모팩스튜디오의 대표이기도 한 장성호 감독이 2015년부터 준비한 작품으로, 기획부터 개봉까지 무려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화산고>(2001)와 <해운대>(2009)는 물론 드라마 <태왕사신기>(2007)와 <별에서 온 그대>(2013) 등에 참여하며 모팩은 K콘텐츠의 시각효과(VFX)를 대표하는 스튜디오로 자리매김했고, 미드 <스파르타쿠스>(2010)를 비롯해 중국영화 <적인걸 2: 신도해왕의 비밀>(2013)과 <적인걸 3: 사대천왕>(2018) 등 다수의 중화권 작품에도 참여하며 해외 시장 개척에도 힘써 왔다. 2017년부터는 버추얼 프로덕션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해 영화, 드라마, 광고, XR(확장현실) 공연 등 국내외 다양한 실감형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에도 참여해왔다. 이처럼 장성호 감독이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킹 오브 킹스>는 대한민국 1세대 VFX 스튜디오라 할 수 있는 모팩의 30년 내공이 일궈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모팩의 지난 30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한국영화계에서 CG를 활용한 본격적인 첫 번째 영화는 <구미호>(1994)다. 배우 고소영이 구미호로 변하는 장면의 시각효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CG 완성도는 할리우드의 그것에 비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CG 관련 회사들은 많았으나 주로 그 기술은 영화가 아닌 CF에서 이용됐고, CF와 달리 영화의 긴 상영시간을 처리하기에는 당시 장비와 기술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이후 영화에 도전한 여러 CG 전문가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맨 처음 ‘CG 슈퍼바이저’로 이름을 알린 이는, <은행나무 침대>(1996)로 한국영화계와 인연을 맺은 당시 20대의 혈기왕성한 장성호였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그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일하다 그만두고, ‘언젠가 컴퓨터만으로 장편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선배의 유혹에 빠져 CG의 세계로 넘어오게 됐다. 1993년 대전 엑스포 포항제철관 작업에 참여하면서, 즉 광고 CG 일을 처음 시작했다. 원서로 공부한 이론이나 기술들을 CF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자연스레 영화로 넘어가게 된 것. <은행나무 침대>는 흥행에도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가능성까지 열었다고 할 수 있기에, 한국영화계에 CGI를 안착시킨 최초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미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던 그는 <은행나무 침대> 후반작업을 도와주면서 처음 ‘영화 일’을 하게 된 것인데, 당시 작업을 진행하던 이가 혼자서는 업무량이 감당이 안 돼 그에게 구조 신호를 보냈던 것. 그런데 그마저 떠나면서 뜻하지 않게 영화 전체를 떠안게 됐다. 심지어 사업자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래서 1995년경 사업자등록을 하고 세금계산서를 떼 주고 하면서 개인사업자로 있다가 2003년쯤 법인으로 전환해 현재에 이르렀다. 믿기 힘들지만 ‘Motion Factory’의 준말인 모팩의 30년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고, 국내 VFX 회사 중 가장 오래된 1세대 스튜디오가 됐다.

199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발전과 함께 CG가 급속도로 확산되며, 장성호와 모팩은 그 중심에 있었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은행나무 침대> 이후 <퇴마록>(1998) 등에 참여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은 뒤, 모팩은 짧은 기간 동안 영화 분야에 있어 한국 최고의 컴퓨터그래픽 업체로 성장했다. 특히 스토리보드부터 제작 과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화산고>(2001)는 모팩의 역량이 한꺼번에 발휘된 작품이다. 인물들이 날려대는 기(氣)의 파동이나 몸을 감싸 도는 물의 모습, 그리고 학교의 전경 등 전체 장면 중 팔십 퍼센트 이상이 CG 작업을 거쳤고,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디지털 색보정(줄여서 ‘DI’라 부르며, 촬영된 필름을 모두 스캔하여 컴퓨터상에서 편집, 시각효과, 먼지 제거, 색보정 등 최종 영상 완성까지 모두 디지털로 작업하는 것)을 시도했다. 그런 최초의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단순한 ‘CG 기술자’ 이상으로, 영화의 흐름을 살려주고 관객의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영화적 안목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이전 사례를 감히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은행나무 침대>나 <퇴마록> 그리고 <화산고>가 CG가 화려하게 도드라지는 영화라면, 그의 솜씨가 뒤로 숨어 있지만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영화들도 많다. 그의 오랜 절친인 김우형 촬영감독이 작업한 <해피엔드>(1999)에서 근조등이 아파트 벽을 타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장면,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개성으로 차를 타고 들어가는 도중에 보이는 ‘쌀은 공산주의다’라는 입간판도 CG로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한 장의 사진 속 인물들을 카메라가 쭉 훑고 지나가는 마지막 컷은,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면이다. 당시에는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하드웨어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당시 국내 최초의 슈퍼 35밀리 영화라고 해서 화제가 됐는데, 그러다 보니 해상도가 커서 1분 20초 정도의 그 마지막 장면을 한 번의 카메라 이동으로 담아내는데 데이터 용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최종 파이널 렌더링(파일로부터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하는데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서 계속 다운됐다. 컴퓨터 5대를 동원해서 계속 렌더링하고 리부팅하면서 겨우 끝낸 장면이 바로 그 마지막 단체사진 장면이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CGI로 가득한 영화는 아니지만, 마치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촬영감독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했던 뿌듯한 순간이었다.


<해운대>(2009)와 <7광구>(2011)는 모팩의 미래를 가늠하게 해줬다. 물론 전자는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작이었지만 <7광구>는 아쉽게도 그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모팩의 기술력만큼은 확고히 인정받았다. <해운대>의 경우 쓰나미와 관련된 ‘물 CG’는 한스 울릭이 이끄는 할리우드의 ‘폴리곤’이 맡았고 그 외의 부분, 하지만 거의 영화 전체라도 해도 다름없는 분량의 CG를 모팩이 처리했다. 이후 모팩은 해외에서 꾸준히 작업 제안을 받게 됐다. 2010년에는 미국 TV시리즈 <스파르타쿠스>, 일본 TV시리즈 <언덕 위의 구름>에 참여하며 기술력을 뽐냈고 2013년에는 클라이브 오웬과 모건 프리먼, 그리고 안성기가 출연한 할리우드와의 합작 영화 <제7기사단>(2015)과 <적인걸 2: 신도해왕의 비밀>(2013)과 <적인걸 3: 사대천왕>(2018) 등 다수의 중화권 작품을 작업했다.


이후 장성호 대표와 모팩스튜디오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간과 예산의 효율성과 표현 방식의 자율성까지 갖춘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 VP)에 매진했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영화, 드라마, 광고, XR(확장현실) 공연 등 다양한 가상 환경의 실감형 콘텐츠 기획∙제작과 실시간 VFX 전반을 아우르는 기술이다. LED 월(Wall)을 활용해 마치 야외 촬영 현장에 가까운 실내 장면을 연출할 수 있으며, 콘텐츠 제작의 전 과정에서 손쉽게 수정해 촬영 단계에서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영상 퀄리티의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 우리가 종종 할리우드의 메이킹 영상을 통해 보게 되는, 오직 그린 스크린으로만 둘러싸여 촬영하지만 실제로는 놀라운 이미지를 구현한 <아바타>(2009)의 행성 공간과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의 현실과 게임 속 세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도 한 차원 높은 실감형 콘텐츠 제작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버추얼 스튜디오 작업에 앞장섰던 국내 버추얼 프로덕션의 선두주자가 바로 모팩스튜디오다. 지난 2023년에는 갤럭시 스튜디오와 ‘파주 스튜디오 개발 및 운영을 위한 사업 추진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K콘텐츠의 생산량에 비해 중·대형 스튜디오 및 첨단 스튜디오가 부족한 까닭에 제작 지연 등 콘텐츠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메이저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묵묵히 걸어온 모팩의 글로벌 시대, 그 중요한 결실이자 새로운 시작이 바로 장편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