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에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이 깨지는 순간, 광장에는 피와 욕망이 뒤엉킨다. 11년 전,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끊고 광장을 떠났던 남기준은 동생의 죽음으로 규칙이 깨지자 다시 돌아온다. 그의 귀환으로 광장은 다시 한번 거칠게 요동친다. 원작 웹툰의 압도적인 몰입감과 냉혹한 세계관을 확장한 이번 작품은 각자의 욕망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서로를 밀거나 당기면서 만들어내는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진한 감정선을 여실히 담고 있다. 그렇게 <광장>은 “누구든 상대를 건든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규칙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욕망하고,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썼다.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의 최성은 감독을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시리즈 <광장>을 만들게 된 과정이 궁금한데요. 웹툰 원작이 있잖아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있던 프로젝트를 감독님께서 맡게 되신 건지 그 시작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맞아요. 처음에는 스튜디오N이라는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제작사에서 제안을 주셨어요. 일단 원작의 이야기 자체가 있고, 처음에 제안이 왔을 때부터 시리즈로 기획되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원작을 기반으로 작가님, 제작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토리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의 작업을 했습니다.
<광장>은 소지섭 배우가 13년 만에 누아르 액션 장르로 돌아온 작품이기도 한데요. 소지섭 배우의 캐스팅 과정도 궁금해요.
사실은 소지섭 배우가 1순위가 아니라… 0순위였어요. (웃음) 너무 같이 하고 싶어서. 일단 많은 원작 팬분도 1순위로 뽑아주셨더라고요. 다행히 선배님이 흔쾌히 해주셔서 수월하게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남기준 역에 소지섭 배우가 적합할 거란 생각을 하셨어요?
저는 사실 그림체와의 싱크로율을 생각하기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분위기, 그가 가진 건조함이 동생한테 얘기하고 싶은데 하지 않는 형의 모습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인간 소지섭도 남기준처럼 굉장히 건조할 것 같고, 열 마디 말보다는 어깨 한 번 툭 두드려주면서 응원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였어요.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까 인간 소지섭의 어떤 면이 남기준과 흡사한 면이 있어서 되게 만족스러웠습니다.

시청자로서는 남기준의 행위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너무 극한의 상황이잖아요. 근데 인물의 전사나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단지 가족이기 때문에 복수를 한다는 설정만으로는 시청자들도 납득하지 못할 것 같았고요. 그런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한테 갖고 있는 죄책감, 속죄 의식 때문에 이 복수의 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남기석 역의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잖아요. 기석 역에 이준혁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도 있을까요?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셨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준혁 배우한테 제안했던 건 아니고요. 그냥 기석이 깡패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조직의 2인자지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조직의 2인자의 비주얼은 비슷하잖아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스마트한 이미지이길 바랐고, 그가 혼자 있는 장면에서 삶에 찌들고 피곤한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인간 이준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같은 걸 보고, 그라는 사람에 대해 아주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 지점들 때문에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고요. 실제로 되게 진중한 사람이었어요. 소지섭 배우와 비슷한 이유인데 이준혁 배우도 되게 진중하면서도 드라이한 그런 매력이 있어서 이 둘이 앉아 있으면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좀 비슷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명 배우의 악역 연기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불호의 이유가 우리가 흔히 봐왔던 악역의 모습과 달라서라고 생각해요. 흔히 재벌 2세 또는 망나니 아들이라고 하면 막 한쪽 눈을 치켜뜨거나 말을 악인처럼 하지 않았을까요? 공명 씨가 연기한 구준모는 그런 게 없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난 이걸 하고 싶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고, 나쁜 의도로 하는 게 아닌 거죠. 공명 씨의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그런 얼굴들이 오히려 이런 순수한 악을 표현하는 것에서 더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해요.
구준모와 기석이 마주하는 장면이 되게 긴장됐거든요. 구준모라는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기 힘든 인물이어서요. 그 장면은 어떻게 찍으셨는지 궁금해요. 그 장면 때문에 기석의 죽음도, 기준의 복수도 일어나잖아요.
기석의 입장에서는 준모의 뺨을 때리는 순간 내가 꿈꿔왔던 캠핑이나 이 조직을 떠난 이후의 생활을 못 할 거라고 직감했을 거예요. 근데 어쨌든 자신과 광장이라는 세계 때문에 형이 아킬레스건까지 자르고 떠났는데, 그 지점에 대해서 모욕하고 희롱하는 걸 보고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거죠.
그 장면을 찍을 때, 첫 번째 뺨 한 대는 준혁 씨가 실제로 때린 거예요. 어설프게 여러 번 가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하냐고 할 수 있는데, 카메라의 앵글로 속여서 때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보다 인물들의 감정이 터지게 하려면 한 대 정도는 정직하게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유일하게 실제로 두 번 맞은 배우가 공명 배우예요. 아버지한테도 실제로 한 대 맞았거든요.
NG는 많이 안 났나요?
네 잘 맞더라고요. (웃음)

남기준은 아킬레스건 한쪽이 끊긴 핸디캡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요. 그래서 이동을 최소화한 액션이 돋보였는데, 기준의 그런 핸디캡이 액션을 구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한 핸디캡이 있는 거잖아요. 한쪽 다리를 전다는 건 액션 디자인에 있어서 태생적인 핸디캡을 안고 출발하는 거니까요. 일단 전진하는 속도가 느리고 발차기 같은 액션을 많이 쓸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전진의 속도는 느리되 후진하지 않고 계속 조금씩이라도 전진하자’는 목표를 갖고 했어요. 일반적인 액션보다는 아마 호흡이 조금 느려 보일 거예요. 요즘의 빠른 템포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익숙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앵글도 좀 많이 바꾸고, 요즘의 액션들은 속도를 빨리 올리는 게 많은데, 저희는 그런 속도 변환도 최소화했어요. 기존의 동작이나 눈빛 하나하나를 클로즈업해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게 하고, 컷 하나하나에서 힘이 느껴지게 하는 거를 목표로 액션 디자인을 했어요.
가장 힘들게 촬영한 액션씬은 어떤 거였어요?
4화에서 기준이 구준모를 처리하러 가는 그때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공간이 좁으니까. 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카메라와 여러 인원이 그 안에 같이 들어가야 하니까요. 저희는 현장에서 그 공간을 ‘개미굴’이라고 불렀어요. 약간 개미굴처럼 넓었다 좁아졌다 하거든요. 개미굴 액션이 다른 액션 장면에 비해서 좀 더 체험할 수 있는 액션이었으면 했거든요. 시청자도 그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기준처럼 같이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기를 바랐어요. 이걸 단지 일인칭으로 찍는다고 그 느낌이 날 것 같지는 않고, 어디를 둘러봐도 꽉 막혀 있는 느낌으로 답답함을 체험하게 하고 싶었어요.

<광장>은 무게감 있는 액션씬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최병호(임형국)나 심성원(이범수), 김춘석(안세호)처럼 결국에는 서로 의리를 지키는 인물들의 서사도 볼 수 있잖아요. 이런 인물들의 서사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어요?
그들끼리 의리를 지키고 이런 것도 있지만, 그게 기준의 동력에 힘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러니까 단지 동생이 죽어서 계속 나아가는 게 아니라 춘석과 병호가 죽었을 때도 기준이 준모를 죽이고자 하는 분노의 감정이 확 오르는 거죠. 그들의 죽음이 기준의 감정을 다시 한번 폭발하게 하는 발화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장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광장>을 촬영한 이후에 추영우 배우가 대세 배우가 되었어요. 근데 <광장>을 촬영할 당시에는 경력이 많이 안 된 배우였으니까 감독님께서 촬영 기간에 조언을 한 부분이 있을까요?
제가 감히 조언하기에는 저도 경력이 안 돼서요. 추영우 배우는 그냥 완성형이었어요. 되게 유연한 배우시더라고요. 금손은 큰 야욕과 욕망을 가진 인물인데요. 감정적으로 보면 이주운(허준호), 이금손 부자가 극 안에서 가장 큰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있는 두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는 일관되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굉장히 잘해준 것 같아요. 그냥 배우에게 가장 많이 한 얘기는 “이렇게 연기해 주세요” 이런 게 아니라 “이때 얘는 어떤 마음일까요?”라는 질문을 서로 많이 한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추영우 배우의 어떤 부분이 완성형이라고 표현할 만큼 좋으셨어요?
추영우 배우의 첫 촬영이 기석의 장례식 장면이었어요. 그때 딱 찍어보니까 ‘이 배우는 끝까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성철(조한철)에게 하는 대사의 원래 워딩은 “남 전무 빈소 어디예요?” 였거든요. 근데 그걸 어떻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이 인물이 순수한지 혹은 엄청난 야욕을 가졌는지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때 추영우 배우가 했던 그 대사를 보고는 그 인물의 속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또 대사의 워딩도 함께 논의하다가 바꿨어요. “어디예요? 남 전무 빈소”로요.
근데 그런 세세한 것들이 조직에서 계속 배제되는 금손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도움을 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연배가 훨씬 높은 선배 배우와 호흡을 맞춰도 자기의 해석을 연기로 충분히 다 표현을 하길래 그런 면에 있어서 너무 큰 도움이 됐죠.

<광장>에는 여러 배우가 나오잖아요. 원래 기존에 갖고 있던 배우의 이미지와 실제 만나봤을 때 이미지의 차이가 크다고 느꼈던 배우가 있을까요?
다 조금씩 달랐는데, 이준혁 배우도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되게 소탈하고 섬세하다고 그래야 할까요? 남자답고 선이 굵은 얼굴인데 되게 섬세하시고, 그리고 허준호 배우님 무서울 것 같잖아요. 근데 되게 귀엽게 말씀을 하세요. 되게 귀여우세요. 안길강 선배님도 귀엽고. 그래서 그분들이 좀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 또는 그분들의 이미지와 좀 많이 다르지 않았나 싶어요.

<광장>의 시청자들 사이에서 ‘한국의 <존 윅> 같다’, ‘<범죄도시>의 마석도를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이런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비교되는 건 영광인데, 그렇게 해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작업하지는 않았어요. <존 윅>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중후반부에 구준모를 잡으러 가는 게 <존 윅>의 구조와 흡사한 거지 그 외에는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존 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존 윅> 시리즈의 팬들이 이제 킬 카운트를 세잖아요. 혹시 남기준의 킬 카운트를 알고 계실까요?
공부해 봐야겠는데요? 너무 많이 죽여서. (웃음) 아 근데 저희는 어려운 게 헤드샷이 아니기 때문에 킬 카운트와는 좀 달라요. 제압 카운트를 세야 할 것 같은데, 킬 카운트를 세자면 지금 제가 빠르게 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마네(이재윤) 있고, 차영도(차승원) 있고, 이금손 있고, 외국인 킬러 2명, 그다음에 개미굴에서 보디빌더의 목을 도끼로 내리쳤을 때, 구준모까지. 10명이 채 안 되네요. 킬은 7명입니다. 나머지는 불구가 되거나 쓰러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