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유내강의 20년을 돌아본다. CGV가 최초로 국내 대표 영화 제작사인 외유내강의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6월 11일부터 24일까지 외유내강의 대표작 18편을 상영한다. 2005년 설립되어 첫 작품 <짝패>를 제작한 외유내강은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하다는 사자성어 ‘외유내강’(外柔內强)도 되지만, 밖에서 영화를 찍는 류승완 감독과 안에서 제작사를 운영하는 강혜정 대표 부부 두 사람의 성을 딴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와 함께해 온 제작사 외유내강의 발자취를 스크린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다. 외유내강의 출발점이 된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도 만나볼 수 있다. 누적 관객 2천만 명 이상을 동원한 <베테랑> 1편과 2편을 비롯해 <모가디슈>(2021), <밀수>(2023) 등 최근 흥행작부터 <짝패>(2006),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등 외유내강의 초창기 작품도 상영한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 외에도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2017),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2019),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2019), 필감성 감독의 <인질>(2021) 등도 상영한다. 기획전 예매 및 GV 관련 자세한 내용은 CGV 모바일 앱 및 홈페이지를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며, 티켓가는 7000원이다. 그럼 이제부터, 이번 기획전을 류승완 감독의 세 영화를 중심으로 소개하려 한다. 어쩌면 현재 ‘류승완 유니버스’의 코어를 이룬다고도 볼 수 있는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부당거래>(2010)와 <베를린>(2013)은 서로 다른 스타일로 그 유니버스가 어떻게 확장하고 변주되는지 잘 보여준다. 5년에 한 편 만들기도 힘든 이 업계에서, 무려 서로 다른 이 세 편을 만든 5년이라는 시간이 어쩌면 지금의 류승완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주를 누비는 호쾌한 한국형 007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어쩌면 류승완은 토종 OTT의 선구자다. 영종도를 만주라 우기고, 합천의 세트를 상하이역이라 우기는 뻔뻔함의 극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 리>, 2008)는 류승완이 2000년에 만든 이른바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LEE>를 장편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OTT가 없던 시절, 극장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으로 바로 공개한 영화라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고, 두 달 만에 50만 조회수를 기록했을 정도로 큰 화제였다. 바로 그 단편의 배우 임원희가 그대로 출연해 다시 도끼빗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고, 더 관능적인 여자들이 그 주변을 맴돌다 미끄러지며, 코미디와 액션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겠다고 달려드는 호쾌한 영화가 바로 <다찌마와 리>다.

지금의 강동구 천호동 외유내강 사무실이 아니라, 오래전 <다찌마와 리>를 준비하던 즈음의 류승완을 인터뷰하기 위해 작업실에 들른 적 있다. 바로 등 뒤에 붙어있는 오우삼의 <영웅본색>과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포스터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붙어 있었다. 심지어 공간이 협소해 가로형 포스터인 <네 멋대로 해라>가 <영웅본색> 포스터 위를 살짝 덮고 있었다.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영화를 기어이 한 공간에 마주하게 둔 그의 속내가 무척 궁금했다.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감각과 정서가 내부에서 여전히 역동적인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사무실 내 영화 포스터 감상 시간은 계속됐다. 그가 갑자기 홍금보의 <부귀열차>(1986) 포스터 문구를 읽어주며 박장대소했다. “大型스크린을 압도하는 박력과 흥분! 아이구 숨차!” ‘아이구 숨차’라는 말을 포스터에 박아 넣은 당대의 분위기가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포스터들을 둘러보며 시원하게 웃고 난 뒤 류승완 감독이 입을 열었다. “요즘엔 워낙 세련된 방식으로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는데, ‘아이구 숨차’라는 카피를 넣을 정도로 그 당시의 분위기가 참 귀엽다. 영화를 향한 사람들의 애정도 더 넘쳤던 것 같다. <다찌마와 리>도 그런 귀여운 정서를 되살려보고 싶다. 극장에서 맘껏 박수 치며 볼 수 있는 그런 즐거운 영화를 꿈꾼다.”

1940년, 거대한 어둠의 조직이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해가는 가운데 최정예 특수요원들의 명단이 담긴 국가 일급 기밀문서와 여성 비밀요원 금연자(공효진)가 작전 수행 도중 바람처럼 사라진다. 임시정부의 수장들은 감춰뒀던 마지막 비장의 병기를 꺼내기로 하는데,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채 정의를 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총구를 겨누는 남자, 그는 바로 다찌마와 리(임원희)다. 비로소 실체를 드러낸 그는 최고의 무기 개발자 남박사(김영일)를 통해 신형 무기를 지원받고, 첩보계의 관능적 스파이 마리(박시연)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이한다. 하지만 기밀문서의 행각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사건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미궁에 갇혀버린다. 이제 그는 상하이, 미국, 만주, 스위스 등 세계 전역을 넘나들며 첩보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거기에 만주 벌판에 집을 짓고 홀로 사는 이름 없는 소녀(황보라)와 만주 국경지대에서 약자를 상대로 악행을 일삼는 불한당 중의 불한당이자, 뭔가 좀 부족해 보이는 ‘국경 살쾡이’(류승범)가 끼어든다. 그들과 더불어 다찌마와 리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진상6호(안길강)와 진상8호(정석용), 그리고 조국 대신 사랑을 택한 이중스파이 마담 장(오지혜)도 기회를 노린다. 또한 그 반대편에서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악랄한 마적단 두목(이지만 말을 타지 못하는) 왕서방(김병옥)과 기밀문서를 입수해 임시정부 비밀요원들을 모두 소탕하려는 일본측 첩보 브로커 ‘다마네기 야시 후까시’(김수현)가 호시탐탐 다찌마와 리를 노린다. 이렇게 화려한 등장인물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아이구 숨차.

먼저 <다찌마와리>는 압록강과 두만강 정도를 제외하고는 영화 속 무대가 모두 해외다. 베이징 주재 소비에트연방대사관에서 시작해 도쿄로 넘어갔다가 다시 상하이로 가서는 또 미국 프린스턴대학으로 간다. 거기서 다시 만주로 넘어온 뒤 만주의 국제무역시장과 마적단이 있는 광활한 본거지를 휘젓고는, 스위스로 넘어가서 비밀은행과 오페라 극장을 갔다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도 탄 뒤 대단원의 막은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플레밍 목장이다. 이처럼 영화는 세계 각국을 누빈다. 물론 모두 국내 로케이션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과거 1960-70년대 반짝 인기를 끌었던 한국형 첩보액션영화들은 홍콩과 도쿄 등 필사적으로 이국적 배경을 끌어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류승완의 표현을 빌자면 “마음은 <007>인데 몸이 <전원일기>였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호방하고 뻔뻔한 로케이션이라고나 할까. 비장의 장소는 역시 만주벌판이다. 2008년 여름, 한 달 정도 먼저 개봉한 김지운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 직접 중국으로 떠났다면 <다찌마와 리>는 인천 영종도에서 만주 장면을 완성했다. 다찌마와 리가 자신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시원한 액션으로 제압하며 가장 격렬하고 인상적인 액션신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 액션영화의 흐름 안에서 “역시 류승완!”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외유내강 창립작이자, 자신이 직접 주연으로 출연한 <짝패>(2006)가 류승완 그 자신에게도 어떤 새로운 시작과 같은 의미였다면, 자신의 왕년의 작품을 불러내 장편 극영화로 업그레이드한 <다찌마와 리>는 새로운 모색의 의미가 깊이 담겨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자신 과거 작품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다찌마와 리>는 자신감과 유쾌함으로 충만한 영화다. 당시 62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서는 실패했다 할 수 있으나, 지금의 새로운 관객과 어떻게 조우할지 무척 궁금하다.
※ 외유내강 20주년 기획전에 대한 글은 아래 <부당거래>에 대한 두 번째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