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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 20주년 기획전, 류승완 감독의 세 영화 돌려보기 ② : 〈부당거래〉(2010)

주성철편집장

※ 외유내강 20주년 기획전에 대한 글은, 아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 대한 첫번째 글에서 이어집니다.

 

 

한국형 누아르의 독보적 하위 장르,

‘검사 영화’의 정점 <부당거래>(2010) 

〈부당거래〉
〈부당거래〉 포스터

자신과의 싸움. 류승완의 <부당거래>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그의 서명과도 같은 액션신들은 완전히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그는 거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듯 작정하고 덤벼든다. 우리가 흔히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향해 기대하는 것, 장르나 액션이라는 축에 기대어 예상하는 것, 그리고 영화광 감독의 작품을 헤집기 위해 여타의 ‘한핏줄 영화’들을 마구 떠올려보는 것 그 모두로부터 멀찌감치 달아나 있다. 그의 이전 영화들과 명쾌하게 이어지는 교집합이라면 류승범이라는 배우 정도랄까. 그처럼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마주할 때 많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

 

〈부당거래〉
〈부당거래〉

<부당거래>가 이전 류승완의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핵심은 그가 자기만의 ‘오리지널’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연쇄살인 용의자가 사망하고 경찰과 스폰서, 그리고 검사가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다. <부당거래>는 그들의 뒤틀린 먹이사슬을 헤집으며 사회를 향해 내지르는 류승완의 직격탄이다. 더불어 그것이 장르영화의 화법과 만나는 무척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준다. 그는 더욱 능수능란해졌고 자기만의 오리지널리티에 계속 더 다가가고 있다.

 

 

〈부당거래〉
〈부당거래〉

대한민국 검사와 경찰과 스폰서와 기자가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찍는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지는데, 계속된 검거 실패로 질타를 받던 경찰청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가짜 범인인 ‘배우’를 만들어 사건을 종결짓는 것. 사건 담당으로 지목된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황정민)는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번번이 승진이 좌절됐지만, 승진을 보장해주겠다는 강국장(천호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사건에 뛰어든다. 그는 스폰서인 해동건설 사장 장석구(유해진)를 이용해 사건과 무관한 용의자를 범인으로 조작해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한편, 부동산 업계의 큰손 김회장(조영진)으로부터 스폰을 받는 검사 주양(류승범)은 최철기가 입찰 비리건으로 김회장을 구속시켰다는 사실에 분개해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부당거래〉
〈부당거래〉

검사(류승범)는 치밀하게 각본을 짜고 경찰(황정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출하며 스폰서(유해진)는 그 디렉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꾹 참고 열연을 펼친다. 잘 난 놈 하나 없지만 흥행은 제작 전부터 보장돼 있다. 펀딩 걱정도 없고 개봉 스크린 수를 염려할 필요도 없다. 전국 5천만 인구 각 가정의 TV에서 바로 와이드 릴리즈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는 스타 캐스팅을 하지 않은 탓에 금세 뒤틀린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아무리 가진 것 없는 무명 비직업배우를 캐스팅했다지만 개런티와 복지에 신경을 안 쓰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한국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지만, 좀 과장하자면 보는 사람에 따라 영화 속 영화 만들기의 과정을 통해 이른바 영화판의 고단함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감독이건 검사건 경찰이건 영화 하나 만들기 참 힘들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모두에게 배우 캐스팅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부당거래>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괜히 엉뚱하게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를 끌어들이자면 <부당거래: 범죄조작단>쯤 될 것이다.

 

 

 

〈부당거래〉
〈부당거래〉

송능한 감독의 <넘버 3>(1997)로 시작해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과 한재림 감독의 <더 킹>(2017) 등을 거쳐 최근작인 황병국 감독의 <야당>(2025)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계 특유의 범죄누아르 장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검사 영화’의 계보 속에서 <부당거래> 역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스폰서가 검사에게 건넨 고급시계가 “요즘 핸드폰으로 시계 보니까 시계 차고 다닐 일이 없다”며 다시 기자의 팔목에 채워진다. 기자의 다른 팔목은 한복을 차려입은 요정 기생의 목을 또 두른다. 모든 게 돌고 돌아 건네지고 감고 감싸며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끊으려야 끊어지지 않는 부정과 비리의 악순환, 어차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 않다.

 

 

 

〈부당거래〉 카메오 출연한 황병국 감독(왼)과 이경미 감독
〈부당거래〉 카메오 출연한 황병국 감독(왼)과 이경미 감독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변변한 폭력 장면이나 욕설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가 ‘사회지도층이 국민을 상대로 조작을 한다’는 설정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올해 개봉한 <야당>의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불법 약물의 오남용과 제조, 이용 방법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밖에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된 성적 맥락의 신체 노출과 성행위 등 주제, 선정성, 폭력성, 약물, 모방위험에 있다”는 지극히 구체적인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면,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영화라고는 하나 굉장히 납득하기 힘든 사유이긴 하다.

 

〈부당거래〉
〈부당거래〉

<부당거래>에서 황정민과 류승범과 유해진, 그들은 거의 최고의 연기를 펼쳐 보인다. 그들은 누가 더 악당인지 내기를 하는 것 같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자료와 증거를 준비하고 또한 그것을 예상한 당사자는 그 이상의 증거를 제시하려 동분서주한다. 공격과 방어, 내가 상대보다 더한 증거와 자료를 갖고 있다는 데서 오는 우월감. 그것은 상대의 초식과 기술을 간파하고 더 큰 비기를 연마한 고수의 여유와도 같다. 그래서 <부당거래>는 류승완의 영화들 중 가장 액션이 없지만 아니, 시종일관 말로만 싸우기에 액션영화라고 할 수도 없지만 마치 익숙한 그의 액션영화를 보는 것 같은 합의 쾌감을 준다. 그래서 이것은 또한 류승완의 영화가 분명 맞다. 말하자면 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은근히 기대했을 법한 류승완 특유의 액션신이 없지만 굳이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박력과 투지로 넘친다. 류승완이 자신의 에너지를 잃지 않으면서 더욱 노련하고 세련돼졌다고 해야 할까. 그처럼 <부당거래>는 당대의 현실과 장르영화가 조우하는 무척 특별한 사례다. 좀 식상하지만, 당시의 감상은 이랬다. 류승완은 여전히 전진한다.

※ 외유내강 20주년 기획전에 대한 글은, 아래 <베를린>에 대한 세번째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