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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순이 말한 노스탤지어의 의미는? 〈폭싹 속았수다〉 임상춘 작가의 작품 세계

추아영기자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어깃장을 놓는 관식(박보검)의 무당 할매에게 된통 애먼 소리를 들은 애순(이지은)은 도로 관식에게 고함을 친다. “나는 무조건 서울놈한테 시집갈 거야. 섬놈한테는 절대! 급기야 노스탤지어도 모르는 놈은 절대! 네버!”.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애순은 참 요망지게 컸다. 애순의 크고 높은 포부는 제주 바당을 뒤덮고도 넘쳐흐른다. 그녀는 “아부지, 엄마 다 잡아먹은 저놈의 바당이” 동서남북으로 출렁대는 제주에서 벗어나 서울로 가고 싶어 한다. 그러니 어디 애순이 제주 섬놈에게 시집을 가고 싶을까. 그런데 왜 애순은 ‘노스탤지어’를 모르는 놈에게도 시집을 가려 하지 않을까? 노스탤지어가 뭣이 중하길래?

 

〈백희가 돌아왔다〉(왼), 〈동백꽃 필 무렵〉
〈백희가 돌아왔다〉(왼),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의 드라마는 4부작 단막극 <백희가 돌아왔다>, 장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폭싹 속았수다> 등 육지에서 분리된 섬, 바다를 낀 어촌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그려왔다. 이 세 작품을 임의로 ‘시골 3부작’이라 부르고 글을 이어가려 한다. 사회에서 1인분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 <쌈, 마이웨이>는 서울을 배경으로 그려지기에 논의에서 제했다. 임상춘 작가의 시골 3부작 속 공간은 포장하지 않은 나의 본성, 지우고 싶은 나의 과거를 너무 잘 아는 사람들로 가득한 <백희가 돌아왔다>의 섬월리, 남 말 하기 좋아하는 아낙네들이 입방정을 떨어대는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처럼 폐쇄적인 어촌 공동체가 작은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다. 좁디좁은 시골 저잣거리에 퍼지는 소문은 마치 엄숙한 법정에서 재판관이 내리는 판결처럼 권위를 지니고 진실을 대신한다. 그렇게 그들의 입방정은 너무도 손쉽게 애먼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공효진)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공효진)
〈폭싹 속았수다〉
〈폭싹 속았수다〉

 

편견과 낙인으로 가득한 곳에서 임상춘의 인물들은 “팔자 세고, 박복한 년”으로 통한다. 어려서는 일찍 부모를 여의거나 버림받으면서 고아가 되고, 자라서도 남편 없이 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백희와 동백이)로 살아간다. “엄마가 없으면 일생이 만만”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묘한 그늘을 무섭게도 잘 알아차린다. 그들은 백희(강예원)가, 동백이가, 애순이가 감추려 애를 써도 감춰지지 않는 일생의 허기짐을 아프게 파고든다. 세상살이의 풍파에 혼자 맞서서 지켜낸 그녀들의 굳건한 삶은 뭣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불운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백희, 동백이, 애순이는 수시로 하늘을 탓해도 모자라건만, 남 탓 한 번 하지 않는다. 주저앉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인 내 편인 자식에게 기구한 팔자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살아간다.

 

〈동백꽃 필 무렵〉 게장 골목 아지매 3인방(왼), 용식(강하늘)과 동백
〈동백꽃 필 무렵〉 게장 골목 아지매 3인방(왼), 용식(강하늘)과 동백

 

그런데 참 이상하다. 족히 백 번도 넘게 그녀들에게 돌을 던져오던 그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옹산의 아낙네들은 미혼모인 동백이에게 세모눈을 뜨고 흘겨보고 쑥덕거리면서도, 김장철만 되면 김치를 가져가라고 야단이다. 사사로운 질투심에 휩싸여 미워하면서도 넙죽넙죽 인사를 잘 건네는 동백이에게 시나브로 든 정을 투박하게 표현한다. 그들은 평생을 마음 둘 곳 없어 정처 없이 떠돌던 동백이에게 그렇게 머무를 집이 되어 준다. 동백이는 그런 그들을, 그런 그들이 살아가는 옹산을 “이상하다”고 말한다. 대놓고 미워하지만 김치는 꼭 챙겨주는 그들은 너무도 멀끔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진공 상태의 포장을 한 도시 사람들과는 다른 순박함과 진실됨을 지니고 있다. 옹산에는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한국의 정이 수북이 남아 있다. 애순이 말한 ‘노스탤지어’는 동백이가 옹산에서 느끼는 한국의 정, 인물들과 작품 전체가 자아내는 휴머니즘, 각박한 삶 속에서 찾은 진정한 행복, 삶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서 당도한 편안한 안도를 표상한다. 노스탤지어는 임상춘 작가의 모든 작품을 휘감는 주된 정서이다. 백희와 애순이가 그토록 섬을 벗어나고 싶어해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동백이가 서울을 벗어나 옹산에 자리 잡은 이유. 임상춘 작가가 인물들을 자꾸만 시골로 복귀하게 하는 이유는 경쟁 사회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며 찾아 나서는 해답을, 진정한 행복을 노스탤지어 어린 과거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
〈폭싹 속았수다〉

 

다시 <폭싹 속았수다>로 돌아오자. 서울의 시인이 아닌 부산의 공순이가 될 위기에 처한 애순은 관식에게 달려간다. 세상천지에 자기를 반겨주는 이는 관식뿐이기에. 관식은 섬놈에게 시집가기를 서러워하며 우는 애순을 달래주기 위해 시인 유치환의 노스탤지어를 그린 시 ‘깃발’을 외친다.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섬놈 딱지는 뗄 수 없더라도, 노스탤지어를 모르는 놈만큼은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관식은 노스탤지어를 부르짖으며 애순을 꼭 껴안는다. 둘의 애틋한 장면 뒤에는 바로 푯대에 매달려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이 등장한다. 푯대에 매달린 깃발은 관식과 애순의 숙명적 한계를 드러내며, 그들의 야반도주가 하룻밤의 달콤한 꿈에 그칠 것을 암시한다.

 

〈폭싹 속았수다〉
〈폭싹 속았수다〉

 

유치환의 시 ‘깃발’에서 노스탤지어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해 품는 애수의 감정이다. 시 속 화자는 이상향으로 가지 못해 애수를 느끼고 끝내 좌절한다. 유치환의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은 임상춘 작가의 드라마에서 성큼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다. 제주를 떠나기 위한 애순의 첫 시도가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순은 유치환의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꿈꾸었다. 행복을 좇는 애순은 대학에 가고, 시인이 되면, 또 제주를 벗어나 육지로 가면 원하는 행복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애순과 관식은 부산에서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야반도주에 실패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동백꽃 필 무렵>의 마지막 화에서 동백이가 건네는 대사는 행복을 좇는 애순이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뭘 행복하자고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 행복은 좇는 게 아니라 음미야. 음미. 나 서 있는 데서 이렇게 발을 딱 붙이고 찬찬히 둘러보면, 봐. 천지가 꽃밭이지”. 임상춘 작가의 심정적 의미에서의 고향, 평생을 찾아 헤매는 이상향은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아닌 지금, 나의 주변, 내 곁에서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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