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트맨과 짐 모리슨을 연기했던 배우 발 킬머가 향년 6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80년대 전세계적인 메가 히트작 <탑건>(1986)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매버릭’과 갈등하는 ‘아이스맨’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흘러 무려 40여 년 만에 제작된 속편 <탑건: 매버릭>(2022)에도 출연했던 발 킬머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떴다. <탑건> 뿐만 아니라 밴드 도어즈의 짐 모리슨을 연기한 <더 도어즈>(1991),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배트맨이 되었던 <배트맨 포에버>(1995) 등 수십 편의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5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발 킬머는 어려서부터 연기에 재능을 보였고, 고교 졸업 후엔 뉴욕의 명문 예술대 줄리어드의 드라마 학부에 최연소로 입학하기도 했다. 데뷔작인 ZAZ 사단의 코미디 <특급 비밀>(1984) 이후 톰 크루즈와 함께 출연한 토니 스콧 감독의 <탑건>을 발판으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특급 비밀>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사하는 것 같은 연기를 통해 음악적 재능을 뽐내기도 했던 그는 올리버스 스톤 감독의 <도어즈>(1991)에서 전설의 록그룹 도어즈의 리드싱어 짐 모리슨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이후 마이클 만 감독의 범죄영화 <히트>(1995)에서 당대 최고 배우들인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와 함께 출연했고, <배트맨 포에버>를 통해서는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2014년에는 후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기관절개술을 받아 원래의 목소리를 잃었지만, 배우인 딸 메르세데스 킬머와 함께 영화 <블랙머니>(원제: Paydirt, 2020)에 출연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후 사실상 배우 생활을 그만둔 그는 <탑건: 매버릭>에 우정 출연하며 이를 유작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