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홍표 코미디는 언제나 관객에게 통했다. 영화 <족구왕>(2014)으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이후,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 <멜로가 체질>(2019), <닭강정>(2024)까지. 매번 진지한 얼굴로 웃음보를 자극하는 이 배우는, 이번 영화 <하이파이브>에서도 그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반듯한 단발머리와 함께 입으로 강풍을 내뿜는 무명의 시나리오 작가 박지성 역을 맡은 안재홍은 마치 스크린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진중하고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스크린 속 지성과 배우 안재홍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이파이브>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심지어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을 제치고 예매율 1위를 달성했는데요. 소감 한 마디 해주세요. (<하이파이브>는 개봉 전 전체 예매율 1위에 올랐고 개봉 후 첫 주말 약 3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너무 기분 좋았어요. 예매율 1위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벅찼죠. 이 기분 좋은 상승세를 타고, 더 많은 관객분들에게 오래오래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작품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굉장히 달랐어요. 보통 초능력자는 특별한 존재잖아요. 인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영웅처럼 운명과 맞서 싸우고요. 그런데 <하이파이브>는 그런 장르의 공식을 완전히 비틀어요. 이 영화 속 초능력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하찮게 써요. 정확한 용도나 목적도 모르고요. 지성만 해도, 엄청난 폐활량을 가졌지만 바람을 정교하게 다루진 못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빨리 마시는 정도로 구현된 능력이죠. 초능력이 있지만 어딘가 평범하고 덜 정돈된 사람들. 그 설정이 굉장히 재밌고 매력적이었어요.

개봉 전부터 단발머리 비주얼이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요. 머리 스타일은 배우님 아이디어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감독님께 정식으로 출연 제안을 받기 전, 캐릭터와 설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과정이 있었는데요. 그때 ‘입으로 바람을 쏜다’는 설명을 듣고, 시각적으로 이 강풍이 잘 드러나려면 머리가 휘날리는 게 제일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죠. 아직 제안받기 전이었는데도요. (웃음) 이후에 감독님께 “이런 기장과 비주얼이면 어떨까요?” 하고 여쭤봤더니 바로 좋다고 하셨어요. 시사회 때도 관객분들이 단발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해주셔서 기분 좋았어요.
극 중 박지성은 ‘세 개의 폐를 가진 남자’라는 별명을 지닌 박지성 선수의 이름을 따온 캐릭터로 보이는데요. 엄청난 폐활량을 갖고도, 리코더를 불거나 바람을 허공에 날리는 지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무협지에서 손으로 장풍을 쏘듯, 지성은 입으로 장풍을 쏘는 인물이죠. 폐를 이식받은 뒤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어서 화재 현장에서 고립된 사람을 구해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막상 눈이 매워서 도중에 나오는 그런 모습도 있어요. (웃음) 능력은 크지만 활용은 서툰 인물인 거죠. 이름도 박지성 선수에서 따왔다고 들었어요. ‘산소탱크’라는 별명이 워낙 유명하시잖아요. 박지성 선수께서 이 영화를 보셨으면 정말 좋겠어요. (웃음)

그런 박지성은 처음엔 무명의 시나리오 작가로, 자신감 없는 찌질한 모습으로 그려지다가, 어느 순간 남을 위해 용기를 내죠. 화재 현장으로 뛰어드는 장면이 인물의 전환점처럼 느껴졌는데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지성은 사회성도 부족하고 이기적인 면이 강한 인물이에요.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쓰게 되는 게 바로 그 장면이죠.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늘 자기 생각만 하던 사람이 시선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리는 순간이니까요. 이 영화의 설정이 재밌는 게, 모두 나쁜 부위에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들이잖아요. 누군가에게 받은 ‘도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장면이기도 한데 그런 맥락에서 의미가 컸어요.
지성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극장 내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실까요?
호프집에서 멤버들이랑 얘기를 나누다가 아무도 내 편을 안 들어주니까 속상해서 나가려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한숨을 쉬면 밑에 있던 전단지가 확 튀어오르거든요. 촬영 때 타이밍 맞춰 강풍기를 틀어주셨는데, 제가 그 바람에 진짜 놀라서 움찔한 게 그대로 찍혔어요. 일부러 만든 웃음이 아닌데도 관객분들이 크게 웃으시더라고요.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웃음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걸 다시 느낀 장면이었어요.

기동(유아인)과의 키스신도 큰 화제가 됐습니다. 그 장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연기하셨나요? 비하인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우선 그 장면은 ‘키스신’보다는 ‘인공호흡 장면’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웃음) 지성 입장에서 기동과 입을 맞추는 그 순간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보다는, 능력을 나누는 와중에 “이게 지금 뭐지?” 싶은 의아함이 더 큰 감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장면을 본 많은 분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신이라고 하시는 것 같고요. 그 어정쩡한 감정이 우리 영화의 정서와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요구르트 카트를 타고 펼쳐지는 카체이싱 장면은 상상도 못 했던 설정이었어요. 대본 보셨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고, 실제 촬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처음 대본 봤을 때 저도 ‘이 장면을 어떻게 찍지?’ 싶었어요. 정말 궁금했죠. 실제로는 그 장면을 굉장히 많이 나눠서 찍었어요. 크로마키 앞에서 찍은 컷도 있고, 실제 주행도 했고요. 자동차가 요구르트 카트를 끌고 가면, 저희는 와이어를 매고 액션팀과 타이밍을 맞춰 움직였어요. 또 배우 없이 배경과 속도감만 따로 찍은 장면도 있고요. 굉장히 많은 공이 들어간 장면이에요. 그런데도 완성된 걸 보면 자연스럽고 재밌게 느껴지잖아요. 그게 다 감독님과 제작진이 치밀하게 고민하고 회의하고 작전 짜서 만들어낸 결과예요. 저는 그걸 ‘강형철 매직’이라고 생각해요.
강형철 감독님과의 인연도 특별하다고 들었어요.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통해 처음 만나셨다고요?
네, 15년 전이에요. 제가 출연했던 <술술>(감독 김한결)이라는 단편이 미쟝센 단편영화제 ‘희극지왕’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는데, 그때 심사위원 중 한 분이 강형철 감독님이셨어요. 이번 <하이파이브>로 다시 만나게 돼서 저도 감회가 새로웠고요. 이번 작업하면서 특히 느낀 건 감독님의 코미디가 굉장히 세련됐다는 거였어요. 애드리브나 개인기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서 웃음이 나오게 하는 방식이랄까요. 실제로 이 영화엔 애드리브가 거의 없어요. 대사가 너무 잘 짜여 있어서 애드리브를 넣고 싶은 생각조차 안 들더라고요. 그 리듬을 충실히 살리는 데 집중했어요.

공장 화재 장면에서 계단을 내려오다 삐끗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의도한 디테일인가요, 우연인가요?
그 장면도 감독님의 디렉션이었어요. 그냥 내려와도 되는데, 거기서 한 번 삐끗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바로 감독님이 잡아내는 정서예요. 이후에 철제 계단의 소리를 후반에서 강조해주셨는데, 그 작은 디테일이 캐릭터의 어설픔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요. 배우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시고, 그 안의 디테일을 정교하게 포착하는 분이에요.

<응답하라 1988>에서 엄마와 아들로 호흡을 맞췄던 라미란 배우와는 10년 만의 재회입니다. 다시 호흡 맞춰보니 어땠나요?
다시 (라)미란 선배님과 함께 한 작품이 <하이파이브>여서 정말 좋았어요. 오랜만에 호흡을 맞췄는데, 여전히 그 마법 같은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면 장면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요. 그래서 또 어떤 장르든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서 역의 이재인 배우와의 티키타카도 돋보였어요. 이재인 배우를 아직 아역 이미지로 기억하는 분도 많을 텐데, 함께 연기해보니 어떤 배우였나요?
사실 저도 재인이가 <뽀뽀뽀> 출신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웃음) 현장에서 딱 느낀 건, ‘천재가 나타났다’는 거였어요. 저랑 나이 차도 꽤 나는데 그런 거리감이 전혀 없었고요, 리액션이 정말 뛰어나요. 말 그대로 찰떡같이 받아쳐줘요. 또 현장에서 스태프분들이 재인이를 엄청 예뻐했어요. 뭔가 “오구오구~” 하게 되는 매력이 있달까요. 액션 장면 찍고 나면 다들 박수쳐주고, 기분 좋게 에너지가 도는 분위기였어요.
배우님이 꼽는 <하이파이브>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부분인가요?
저희 영화는 관객분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다시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에요. 사운드, 영상, 음악이 굉장히 잘 짜여 있어서 오랜만에 “아, 이래서 극장에 오는 거지”라는 감각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완성도 높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아직 <하이파이브>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추천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하이파이브>는 누구와 봐도 신나는 영화예요. 데이트 무비로도 좋고, 가족, 친구랑 함께 봐도 좋아요. 무겁지 않고, 머리 비우고 웃고 싶을 때 완벽하게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