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레고리력'을 사용하지만, 분야마다 한 해를 열고 닫는 순간은 모두 다를 것이다. 1월은 새해이지만, 영화계에선 이제 한 해를 닫는 느낌이기도 한데, 미국 현지의 가장 큰 시상식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월 8일 오늘, 미국 현지에선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 글로브가 열렸다. 올해로 81번째 개최를 맞이한 골든글로브의 핵심만 짚어보겠다.
드라마 승자 <오펜하이머>-뮤지컬코미디 부문 승자 <가여운 것들>
골든글로브는 무척 특이하게도 영화, TV드라마를 모두 아우르는 시상식인데, 심지어 영화는 '드라마' 부문과 '뮤지컬, 코미디' 부문으로 나눈다. 이름이 이럴 뿐, 다른 용어로 교체한다면 '정극'과 '장르극'에 가깝다. 이 구분은 뚜렷하다거나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운데, 올해도 (장르영화 같은) <플라워 킬링 문>은 드라마 부문이고, (실화 바탕 영화인) <에어>는 뮤지컬코미디 부문이기 때문. 그냥 이런 식으로 영화를 나눠서 시상한다 정도만 숙지하고 있으면 되겠다. 반면 조연상은 부문 구분 없이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으로만 수상한다.

최종 정리를 한다면 드라마 부문은 <오펜하이머>의 압승이다. <오펜하이머>는 작품상, 남우주연상(킬리언 머피), 남우조연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감독상까지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킬리언 머피를 언제나 믿고 기용하던 크리스토퍼 놀란이 남우주연상 수상에 가장 기뻐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본인도 골든글로브 감독상은 처음인지라 겹경사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음악상(루드비히 고란손)까지 수상했다.

뮤지컬코미디 부문은 14억 달러를 벌어들인 <바비>가 다소 우세할 듯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가여운 것들>이 주요상을 챙기며 미소 지었다. 작품상, 여우주연상(엠마 스톤)을 가져갔다. 엠마 스톤은 영화 공개 이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가능성까지 점쳐졌는데, 이번 골든글로브에서의 수상으로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바비>는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 등 핵심 부문에 후보 지명은 받았으나 수상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올해 첫 신설한 '영화 박스오피스 성과'상과 오리지널송을 수상했다.
이변, 애니메이션상 수상작은?

아무도 예상 못 한 이변. 골든글로브는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하 <그어살>)에게 주었다. 해당 부문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위시>, <엘리멘탈>, <스즈메의 문단속>이 경쟁을 펼쳤다. 지브리 스튜디오, 더 나아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격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번복하고 연출한 <그어살>은 화려한 영상미와 능수능란한 연출과 별개도 난해한 스토리텔링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반면 영미권에서는 아시아권에서보다 호평에 무게가 실렸는데(로튼토마토 기준 평단 97%, 관객 88%), 이번 골든글로브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가장 유력했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인력 착취 논란에 있었으니 그 여파가 있었는지도.
2024년 기대해! <추락의 해부>-<바튼 아카데미>

이번 골든글로브에서 2024년 기대작도 읽을 수 있다. 아직 국내 개봉 전인 <추락의 해부>는 지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 호평에 걸맞게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비영어권 작품상과 각본상 수상에 성공했다. 주연 배우 산드라 휠러 또한 비영어연기자임에도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랐다. <추락의 해부>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과 사는 부부 중 남편이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아내가 용의자로 기소되며 벌어지는 스릴러로 쥐스틴 트리에가 <시빌> 이후 4년 만에 꺼내든 신작이다. 1월 31일 국내 개봉한다.

또 다른 영화는 <바튼 아카데미>(원제 The Holdovers)다. 알렉산더 페인이 연출을 맡고 폴 지아마티가 주연을 맡은 이번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학교에 남게 된 선생님과 네 학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1970년대 배경으로 예고편부터 복고 분위기를 풀풀 풍긴 영화는 평단과 관객 모두 호평했고, 그 결과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작품상 후보뿐만 아니라 뮤지컬코미디 남우주연상(폴 지아마티), 여우조연상(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모두 가져갔다. 알렉산더 페인과 폴 지아마티는 <사이드웨이>에서 각자의 커리어를 경신한 바 있는데, 이쯤되면 두 사람을 믿고 보는 조합에 포함해도 좋을 것 같다.
드라마, 이거 세 개만 기억하세요

드라마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요약이 훨씬 쉽다. <석세션>, <더 베어>, <성난 사람들>(BEEF). 이 세 작품이 '독식'했다. 드라마 부문은 <석세션>이, 뮤지컬코미디 부문은 <더 베어>가, 미니시리즈 부문은 <성난 사람들>이 작품상과 남녀주연상을 모두 휩쓸었다(키에란 컬킨/사라 스누크, 제레미 앨런 화이트/아요 에드브리, 스티븐 연/앨리 웡). 그나마 부문 구분 없이 수상하는 조연상조차 <석세션>의 매튜 맥퍼딘이 가져갔다. 여우조연상은 <더 크라운> 엘리자베스 데비키가 챙기며 유일하게 체면치레했다. <석세션>은 가상의 거대 기업 웨이스타 로이코를 둘러싼 가족들의 상속전쟁을 다루는데, 시즌 1부터 꾸준히 호평받으며 HBO 간판 드라마로 등극했다. 이번 시즌 4가 마지막 시즌인데 마지막까지 수상에 성공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더 베어>는 죽은 형이 남긴 가게를 물려받은 셰프의 고군분투를 정말 리얼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올해, 한국계의 활약


앞서 요약한 내역 말고도 이번 골든글로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한국계 인물들의 활약이다. 물론 한국계 미국인의 활약을 '국뽕'으로 치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피하고 싶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인들이 거론되는 것은 한 번쯤 짚어볼 만하다. 먼저 영화 분야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드라마 부문 작품상 등 다양한 부문에 후보로 올랐는데, 이 영화는 송능한 감독의 딸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그레타 리와 유태오가 주연을 맡았다. 극 내용도 미국 이민으로 헤어진 소꿉친구와의 만남을 다루며 디아스포라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마찬가지로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연출하고 스티븐 연이 출연한 <성난 사람들>도 극찬 속에 수상했다. 이 작품은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서로에게 악의를 품은 두 남녀의 갈등을 그리는데, 미국의 한인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스티븐 연은 이번 수상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계 배우로 기록됐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