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향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최근 <폭싹 속았수다>는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2위에 등극하며 국내 시청자들은 물론, 글로벌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지난 3월 7일 <폭싹 속았수다>의 1막이 공개된 후 씨네플레이 기자들은 드라마를 전반적으로 호평한 가운데, 2막까지 공개된 현재는 반응이 다소 엇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폭싹 속았수다>가 오는 금요일 3막 공개를 앞둔 가운데, 드라마를 2막까지 정주행한 씨네플레이 기자들의 5인 5색 리뷰를 모아봤다.

주성철 편집장
<폭싹 속았수다> 2막은 배우 김금순과 남권아의 ‘반지 전쟁’으로 그냥 게임 끝이다. 지난 1년 동안 여성 배우들이 일대일로 합을 겨루는 수많은 장면 중에서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긴장감을 보았나 싶다. 대리시험을 부탁하는 오제니(김수안)의 엄마(김금순)와 가사도우미(남권아)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은, 기 센 제주 여성들의 강렬한 화음 안에서 경상도 여성들의 한 칼을 보여준다. 지난 1막에서 부산으로 가출한 관식(박보검)과 애순(아이유)을 홀라당 벗겨 먹으려던 남포장 여주인(강말금)의 존재감으로 끝이 아니었다. 또한 1960년 배경의 1막에서 어린 애순이 최다 득표를 했음에도 부급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1960년 3.15 부정선거와 겹쳐놓았던 것처럼, 2막에서는 1987년 6월 항쟁의 민주적 성과에 역주행하며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역사적 아이러니에 “기숙사 뽑는 데도 분명 비리가 있을 거야”라는 경비 아저씨의 얘기를 겹쳐놓는 걸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직접적인 비유를 피해 은유와 상징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드라마 안에서, 왜 굳이 ‘서울대’와 ‘스카이’와 ‘얄라셩’(당시 서울대 영화 동아리의 명칭)이 구체적인 기표로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제주 도동리’ 자체도 가상의 지명 아니던가. “마지막, 엄마의 사랑은 동화였다. 내 이야기로 동화가 될 수 있을까.”라는 2막의 마지막 대사처럼, 이 이야기를 아름다운 ‘동화’로 받아들이기에는 거의 유일한 걸림돌이 거기 있다.

김지연 기자
아예 훨씬 담백했더라면 어땠을까. <폭싹 속았수다> 임상춘 작가의 의도는 명백하게 ‘대하소설’ 같은 드라마를 집필하는 것이었으리라. 다만, 독자가 속도를 조절하며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게 되는 소설과는 달리 <폭싹 속았수다>는 이미지와 인물들의 감정, 대사가 시청자의 속도를 앞선다. 미처 소화되기 이전에 떠먹여 주는 것 같달까. 이를테면 <폭싹 속았수다> 속 소설의 문체를 사용한 내레이션이나 몇 조연들의 통찰력 깊은 대사, 과거 회상 플래시백 등은 작가의 의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를 적절히 배치했다면 ‘킥’으로 작용했겠지만 한 회에도 그런 ‘킥’이 너무도 많아 담백하기보다는 오히려 과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폭싹 속았수다>를 계속 보게 된 이유는 몇 개의 재미있고 생기 넘치는 에피소드들 때문이다. 1막의 부산 여관 에피소드, 2막의 사교댄스장 에피소드 등은 분명 따로 똑 떼어놓고 보면 재밌다. 그러나 각 에피소드들이 드라마의 큰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파편적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근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제주라는 공간적 배경, 해녀 문화를 편의에 의해 도구적으로 사용한 탓일까.

성찬얼 기자
잘 만들었지만, 이렇게 16부작이라니. 이제 절반인데 벌써 지친다. 삶은 퍽퍽하다. 과거는 더 그랬을 것이다. 그 퍽퍽함을 모르는 건 아니고 <폭싹 속았수다>가 그 지점을 매우 훌륭하게 담아낸 건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을 파편적으로 모으는 드라마의 방식은 썩 즐겁지 않다. 어른이 된 애순/관식과 두 사람의 딸 금명 이야기를 오가는 가운데, 과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거듭 묘사되면서 이야기에 동력이 붙지 않는 느낌이다. 각 에피소드는 훌륭한데, 그럼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진 않는다. 애순과 관식은 평생 사랑하겠지, 어떤 난관이 와도 사랑하겠지. 그것이 기정사실처럼 설정된 부분에서 어떤 고난이 와도 돌파할 것이 보이고, 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과 자녀들)이 계속 고난에 부딪히는 것도 그만 보고 싶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모습을 꿈꾸는 시청자 입장에서 <폭싹 속았수다>는 회한의 감정만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보인다.

추아영 기자
2막에서는 본격적으로 금명의 서사가 시작되면서, 광례-애순-금명으로 이어지는 삼대의 서사가 드라마의 단단한 뼈대를 이룬다. 임상춘 작가는 한국의 근대시인 유치환의 <깃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작품 속에 녹여 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한국의 근대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세 모녀를 잇는 삼대의 서사는 한국 근대 문학의 기념비적인 가정소설인 염상섭의 「삼대」의 구성을 빌려왔을 것으로 보인다. 염상섭의 「삼대」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중산층 가문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세대로 이어지는 가치관의 충돌과 그로 인한 갈등을 그려낸다. <폭싹 속았수다>는 염상섭의 「삼대」가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를 동시에 그려내고, 사회적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 개인을 보여준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다만 임상춘 작가는 중산층 지식인 가정의 모습을 다룬 염상섭의 「삼대」를 보통 사람들인 세 모녀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킨다.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과 금명 역에 같은 배우(아이유)를 기용함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의 가부장적인 사회 풍토 안에서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고통이 이어지는 것을 드러낸다. 너무도 다른 「삼대」의 세 부자가 갈구한 각각의 욕망은 <폭싹 속았수다>에서 삼대에 걸쳐서 반복되는 여성의 고통으로 치환된다.
염상섭의 「삼대」가 가정 내의 갈등으로 한국 근대의 사회상을 그려냈듯이, <폭싹 속았수다>도 세 모녀의 서사와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 아우른다. 2막에서는 새마을운동, 1988 서울 올림픽, 노태우 대통령 당선, 80년대 학생운동 등. 당대를 가늠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물론 1막에서도 3.15 부정선거, 5.16쿠데타 등이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폭싹 속았수다>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작품 속에 계속 불러내며 개인의 상처와 시대의 상처를 함께 어루만지고 있다. 다만 <폭싹 속았수다>는 거대 서사와 개인의 일상을 단순히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대상과 개인의 삶을 봉합한 일련의 작품군은 객관적인 시점을 취해 관객으로 하여금 시대의 사건과 맞물린 인물 개인의 상황을 곱씹어 보게끔 만들어 시대상을 상기시키거나(영화 <로마>) 거대 서사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직접적인 사건으로 개입하는(영화 <벌새>) 등 각각의 방법으로 개인과 시대를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각각의 작품 속에서 개인의 상처는 시대의 상처가 패인 깊이만큼 더 깊고 아프게 다가온다. <폭싹 속았수다>의 역사적 사건들은 당대를 상기시키는 하나의 기호에 지나지 않고, 심정적 연결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이진주 기자
대부분 기대감은 실망할 준비를 하게 하지만, 이번에는 빗나갔다. 2막은 1막에서 촘촘히 직조한 독창적인 캐릭터의 얼굴을 통해 ‘운명’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유기적인 확장을 이루어낸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폭싹 속았수다> 1막은 완벽한 초석이었다. 3대에 걸친 한 가정의 서사를 치밀하게 엮어내며, 애순과 관식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성격을 세밀하게 구축했다.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의 전개는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었으나, 2막을 보고 나니 그 선택이 철저한 계산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2막이 인상적인 지점은 1막과 달리 다층적인 서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며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1막이 전광례와 오애순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비극과 오애순과 양관식의 관계를 섬세하게 조명했다면, 2막은 오애순과 양관식의 냉혹한 현실과 그 상처가 자녀 세대인 양금명에게까지 스며드는 과정을 담았다. 서로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반복되는 설움을 마주하며, 시청자는 어느새 무방비한 채 눈물을 흘리게 된다. 감정이 정리될 틈도 없이, 작품은 저 멀리 나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