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든 사람도, 정주행한 시청자도 “폭싹 속았수다”.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오애순과 양관식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폭싹 속았수다>가 3월 28일 종영했다. 1주에 4화씩 방영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매회 그 깊은 맛을 알아보는 시청자가 많아져 3주 차에 비영어 시리즈 부문 글로벌 1위에 오르는 역주행까지 성공했다. 16화로 종영을 마친 후에도 ‘용두용미’라는 호평을 받으며 당분간은 <폭싹 속았수다> 신드롬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화 공개와 동시에 <폭싹 속았수다>에 뛰어든 씨네플레이 기자들도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폭싹 속았수다> 속 명장면을 하나씩 뽑아 시간 순으로 나열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명장면이 없더라도 아쉬워 말자. 그만큼 <폭싹 속았수다>가 명장면이 참 많았다는 의미니까.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뽑은 <폭싹 속았수다> 최고의 순간을 보고, 본인이 생각하는 <폭싹 속았수다> 최고의 순간도 댓글로 공유 바란다.

염병철(오정세)이 염병할 짓을 많이 해도 제법 맞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의 말대로 “새끼가 애미 품 파고드는 걸 뭔 재주로” 막을까. 광례(염혜란)는 명치에 걸려 속이 시려도 기어코 돈 있는 오 씨 댁에 맡겨뒀던 딸 애순(김태연)을 데리러 간다. 그녀는 애순이에게만 애낀 조구를 잔뜩 들고 와서 인정머리 없는 전 시가 밥상에 시원하게 던진다. 먹을 걸로 치사하게 구는 전 시가 식구들을 혼쭐내는 광례의 조구 투척 장면은 꽉 막힌 속을 후련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내 광례의 절규는 사무치는 애절함을 다시 불러와 속을 아리게 만든다.
이번 작품에서 염혜란 배우는 완벽하게 애순의 엄마 광례로 분했다. 그녀의 서두르는 걸음걸이부터 독을 품고 부푼 복어 마냥 화가 잔뜩 서린 얼굴은 누가 봐도 내 자식 지키려는 어미의 것이었다. 염혜란의 연기는 드라마의 초반부에서 광례-애순-금명으로 이어지는 세 모녀의 서사를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한다. 이어서 애순의 손을 잡아채고 나온 광례는 등불로 자식이 걸어갈 밤바다의 어둠을 밝혀낸다. 애순은 든든한 그녀의 뒤를 졸졸 따른다. 광례와 애순이 걸은 그 길은 훗날, 애순이와 관식이, 또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함께 걷는 길이다. (추아영)


<폭싹 속았수다> 속 또 하나의 재미는 바로 미술이다. 오직 촬영만을 위해 한 마을을 지은 <폭싹 속았수다>의 미술팀은 <헤어질 결심> <아가씨> <올드보이>의 류성희 미술감독을 필두로 극에 입체감을 더하는 디테일을 세공했다. 그중에서도 류성희의 아이덴티티가 가장 잘 느껴진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2화의 부산 여관 시퀀스다. 그중에서도 애순(아이유)과 관식(박보검)이 여관방에 들어서서 여관 주인의 노크 소리를 듣기까지, 약 2분 30초가량 이어지는 롱테이크 신은 촬영감독, 미술감독, 조명감독을 비롯한 <폭싹 속았수다> 제작진의 피, 땀, 눈물이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았달까. 류성희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화려한 벽지 패턴부터 여관방 구석에 놓인 그 시절의 조명과 거울까지, <박쥐> 때 “침대보만 백 개를 검토했다”던 류성희 미술감독다운 집착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물론, 부산 여관 시퀀스의 재미에는 맛깔스러운 연기로 보는 맛을 살린 여관 주인(강말금)의 연기도 큰 몫을 해냈다. (김지연)


예술 작품의 묘미라면, 현실에선 아름답기 어려운 것조차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폭싹 속았수다>의 땍땍거리는 할아버지(박병호)와 조용하지만 남편 못지않게 활약하는 할머니(송광자) 부부가 내겐 딱 그랬다. 일상에서 이렇게 목청 큰 어르신들과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곤 하는데, 제주도 할아버지의 땍땍거림은 그 안에 애정이 묻어있는 게 희한할 정도로 잘 느껴진다. 맨날 혼쭐내듯 툴툴거리지만, 제사상 챙기라고 물꾸럭(문어)를 툭 던져주고 집 간다고 감사하다는 애순과 관식에게 “다 떠들어야 아는 거 아니다”라며 도새기(돼지) 고기를 내주는 특유의 애정 표현은 글자 그대로 웃음과 감동을 모두 안겨준다. 거기에 어쩜 그렇게 찰떡같은 임자가 있는지. 할방 못지않게 할망도 참 정 깊다. 초란을 챙겨주려는 할방을 붙잡길래 살림 다 퍼준다고 뭐라 하시려나 했더니, “너무 아는 척해도 또 싫은 거”라며 애순이의 마음을 신경 써주는 배려심에 눈물이 쏙 나더라. 할망의 배려심은 매일 쌀이 동나는 애순의 쌀독에 밤마다 찾아가 딱 식구들이 먹을 만큼만 쌀을 채워주며 ‘도깨비 항아리’로 만드는 마법까지 부린다. “힘든 사람 지천이다”라는 할방의 말은 너만 힘든 것 아니라는 타박이 아닌 같이 힘내자는 독려가 되고, “사람 혼자 못 산다”는 할망의 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선만 긋는 이 시대 시청자 모두에게 임상춘 작가가 보내는 메시지가 된다. 이 노부부가 가장 많이 담긴 6화의 제목마저 ‘살민 살아진다’이니, 이 얼마나 무정한 듯 따듯한 보통사람들의 표상이 아니겠는가. (성찬얼)

<폭싹 속았수다>를 마지막까지 보게 만든 힘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몫이다. 주연 배우들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재적소에서 신 스틸하는 배우들이 있었기에 이 시리즈의 사계절을 충만하게 즐겼던 것 같다. 무엇보다 2막의 마지막 8화에서 오제니 역 김수안 배우의 성장한 모습도 반가웠지만, <정순> <울산의 별>의 김금순 배우와 가마골소극장 출신으로 이미 20대의 나이에 연극 <오구>에서 노모 역을 맡았던 대배우 남권아 배우(‘남미정’에서 개명)의 ‘반지 전쟁’이야말로 시리즈 최고의 순간이었다. 각각 금명(아이유)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하는 제니 엄마와 그 집의 가사도우미로 출연한, 하지만 제니 엄마를 ‘김양’이라 부르며 과거의 사연을 품고 있는 두 사람의 맞대결은 그야말로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진정한 ‘연기 차력쇼’였다. 공교롭게도 김금순 배우는 영화 <사바하>(2019)에서 초반부에 ‘제천무당’으로 출연했고, 남권아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에서 덕선(혜리)의 이름을 ‘수연’으로 바꿔야 대학에 간다고 했던 ‘선녀’로 출연해, 두 사람 모두 무속인 캐릭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한편, 2025년 4월 1일 고 장국영 배우의 22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게 해준 장면도 꼭 언급하고 싶다. 3막 11화 속 1994년 2월, 정말 1초 정도 지나가는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이 바로 당시 장국영이 모델이었던 초컬릿 ‘투유 그랜드’다. 등장인물들이 장국영을 따로 언급한다거나 하지 않고, 한겨울 많은 연인들이 행복하게 거리를 오고 갈 때, 말없이 “사랑을 전할 땐 투유”라는 광고 카피로만, 클로즈업이 아닌 롱숏으로 쓸쓸하게 서 있는 모습에 울컥했다. 그렇게 올해도 4월 1일이 찾아왔다. (주성철)



사는 게 뭘까.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우직하게 살아온 부부에게 또다시 위기가 닥친다. ‘끝이 없다’며 울부짖던 애순의 말이 예언처럼 맞아떨어진다. 삶은 무자비하게, 잔인할 만큼 끈질기게 이 가련한 부부에게 태클을 건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서사다. 시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 그런데 <폭싹 속았수다>는 이 익숙한 이야기에서 아주 미세한 ‘한 끗’을 만들어낸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이제는 조금쯤 편한 인생을 바랄 법한 애순은, 그럼에도 관식을 감싸안는다. 관식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힘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보려 결의를 다진다.
그 누구보다 낮은 곳에 있던 이들이, 돌산 위에 나란히 앉아 세상을 내려다본다. 서로만 바라보던 두 사람이 이제는 함께 세상을 본다. 이는 곧, 그들의 시선이 넓어졌다는 뜻이고, 마음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증거다. 사랑은 때때로 성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모두가 똑똑하고, 모두가 계산 빠른 세상이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하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계산기를 두드린다. 예상하고, 가늠하고, 재단한다. 그리고 또다시 불안해한다.
하지만 관식은 다르다. 관식은 확신 없이 확신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말을 믿으며 묵묵히 나아간다. 어쩌면 그저 시대의 산물이지만, 관식은 유난히 우직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한숨이 나올 만큼 답답한 순간에도 그는 기어코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나는 헛똑똑이로 살고 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