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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브〉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디어 속 슈퍼히어로 계보

성찬얼기자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


5월 30일 개봉한 <하이파이브>가 12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하이파이브>는 한 기증자에게 장기 기증을 받은 사람들에게 기이한 초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로, 이들이 힘을 모아 사악한 초능력자를 퇴치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국형 히어로’의 표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슈퍼히어로 장르가 범람하던 시절에도 한국형 히어로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아예 전무한 정도는 아니다. 그 나름의 명맥이 이어졌기에 <하이파이브>까지 다다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하이파이브>처럼 한국형 히어로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전우치>
 

〈전우치〉
〈전우치〉


한국형 히어로를 찾으려면 저 멀리 1970~80년대 애니메이션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을 텐데, 거기까지 가기엔 너무 머니 2000년대 등장한 <전우치>부터 시작하면 적당할 것 같다. 야화와 소설의 인물 전우치를 바탕으로 도사 전우치(강동원)가 사고를 치고 현대에 떨어져 화담을 막는 이야기를 그린다. 도사와 도술, 요괴라는 소재 등이 슈퍼히어로 장르보다는 무협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영화를 보면 오히려 무협보다 슈퍼히어로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무공 수련이나 남을 돕는 협에 뜻을 두지 않는 전우치의 성격, 한차례 홍역을 겪고 나서 간신히 각성해 위기를 극복하는 전개 등 슈퍼히어로에 더 가깝게 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묘미는 ‘한국형’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방식. ‘읏챠읏챠읏챠읏챠’로 상징되는 퓨전 사극의 재미와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요괴와의 대결 및 도술 대전이 주는 현란함의 쾌감은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개봉 당시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꾸준히 속편을 내달라는 요청이 이어질 정도. <전우치> 속편 대신 이보다 한 단계 확장한 <외계+인> 2부작이 나오긴 했으나 오히려 캐릭터의 개성이나 퓨전 사극의 묘미가 잘 살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초능력자>

 

〈초능력자〉
〈초능력자〉


제목부터 초능력자다. 당연히 초능력이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근데 빌런이다. 이게 <초능력자>의 특이 포인트다. 영화는 모든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강동원)가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남자 규남(고수)을 발견하고, 두 남자가 서로를 막기 위해 대결을 벌인다는 전개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이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 또한 사실은 괴력을 발휘하고 크게 다치지 않는 초인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게 비범한 남자와 평범한 남자의 대결이 초능력자 대 초인의 구도로 변화하면서 스릴러를 넘어 진정한 슈퍼히어로영화의 틀이 완성된다.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의 재능을 깨우는 사건을 만든다는 것에서, 그리고 두 인물이 완전히 상반된 능력과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2000년에 나온 <언브레이커블>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 또한 평범해보이는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이 스스로 초인임을 깨닫게 되고, 심지어 그 사건 배후에 한 남자의 집념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과정을 다뤘기 때문. 작품의 톤앤매너는 완전히 다르지만 이렇게 자신도 몰랐던 힘을 발견하는 초인을 내세운 독특한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점이 유사하다. 물론 <초능력자>는 속편이 없고, <언브레이커블>은 이후 ‘글래스 삼부작’으로 이어졌단 차이가 있다.

 

<염력>
 

〈염력〉
〈염력〉


한국형 히어로의 분기점을 뽑자면 <염력>일 것이다. 데뷔작 <부산행>으로 천만감독이 된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으로 갑자기 염력이 생긴 석헌(류승룡)이 부당한 사회에 맞서는 과정을 그렸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들이 언제나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기에 <염력>에서도 그런 묵직한 메시지를 담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실제로 공개한 영화는 코미디에 가까웠고,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없는 건 아녔지만 정공법보다는 풍자 같은 우회적인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영화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안겨주지 못했고, 전반적인 완성도도 삐걱거려 혹평을 받았다. 

 

〈염력〉
〈염력〉


그러나 적어도 한국형 히어로라는 지점에선 <염력>을 빼놓을 수 없는데,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속 사건에서 석헌의 존재야말로 사람들이 갈망한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 사실 평범한 것보다 못한, 지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석헌이 폭력과 억압과 미숙한 능력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실제로는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과정은 슈퍼히어로가 없는 현실을 향한 위로처럼 보인다. 물론 이런 특별한 점 외엔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이 보여 시간이 지나도 재평가 받기 어렵겠지만, ‘한국형 히어로’라는 카테고리에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선점했다.

 

<경이로운 소문>
 

〈경이로운 소문〉
〈경이로운 소문〉


언뜻 보기엔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이 <하이파이브>와 가장 닮아보인다. 홀로 활약하지 않고 팀을 꾸려 활약한다는 점, 엄청난 능력과 달리 소시민적인 분위기가 풀풀 난다는 점, 작품에서 트레이닝복이 꽤 인상적으로 그려진다는 점 등에서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이제 막 능력을 얻어 소박하게 모이는 <하이파이브>와 달리 <경이로운 소문>은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이미 활동 중인 팀에 ‘신참’ 소문(조병규)이 합류하며 시작하는 본격적인 장르물에 가깝다. 드라마는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카운터’들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악귀들을 잡는다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경이로운 소문 2: 카운터 펀치〉
〈경이로운 소문 2: 카운터 펀치〉


<경이로운 소문>을 관통하는 슈퍼히어로의 특징은 바로 이중생활. 영화의 주역이 되는 4명의 카운터들은 ‘언니네 국수’라는 국숫집을 하면서 악귀가 감지될 때마다 카운터로 본업에 나선다. 슈퍼히어로 장르가 오래 유지되면서 신분을 숨기지 않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했지만, 그래도 본래 모습을 숨긴 채 악을 때려잡는 것이 슈퍼히어로의 정석. 겉보기에 평범한 이들이 강한 자들을 제압하고, 세상을 구하는 쾌감이 <경이로운 소문>에 담겨있다. 소문의 성장과 카운터들의 유대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부분까지 슈퍼히어로 장르의 한국화라고나 할까.

 

<무빙>

 

〈무빙〉
〈무빙〉


먼저 사전 정보 하나. 원작까지 치면 웹툰 ‘무빙’이 선배지만, 영상화는 <하이파이브>가 먼저다. 다만 VFX를 포함한 후반 작업과 주연 배우의 사건으로 개봉이 연기되면서 2023년 드라마 <무빙>이 먼저 공개된 것. <무빙>이 워낙 히트한 탓에 ‘초능력’과 ‘한국형 히어로‘라는 단어의 조합에서 <무빙>이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 먼저 이 초능력 한국형 히어로에 도전한 <하이파이브>도 무시하면 안 된다. 어떻게 보면 <무빙>이야말로 ‘한국형 히어로’라는 범주에 국한하면 안 된다. <무빙>은 각 인물을 통해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를 조망하는 시선이 녹아있으니까. 

 

〈무빙〉
〈무빙〉
〈무빙〉
〈무빙〉


처음 작품을 여는 김봉석(이정하), 장희수(고윤정), 이강훈(김도훈) 고등학생 삼인방을 시작으로 장주원(류승룡), 이미현(한효주), 김두식(조인성), 이재만(김성균) 등 그들의 부모 세대가 지나온 일들을 ‘대한민국’이란 사회에 적절하게 녹여낸 점이 <무빙>의 핵심 포인트. 원작 웹툰을 집필한 강풀 작가가 각본을 맡은 만큼 원작의 구성을 이질감 없이 더욱 확장한 것도 시청자들과 팬들 모두를 사로잡는 힘이 됐다. 무엇보다 과거 이야기 속 활약상이나 현재의 아이들이 힘을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서사 등이 슈퍼히어로 장르에 걸맞은 재미를 선사한다. 시즌 1부터 굉장히 방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시즌 2까지 제작을 확정하면서 진정한 한국형 히어로물의 대표주자란 말이 손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