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를 보니 이 단어가 맴돈다. ‘파격’. 사실 시리즈의 시초이자 2002년 개봉한 영화 <28일 후>도 그랬다. 개봉 당시 ‘분노 바이러스’라는 가상의 질병으로 좀비물을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니까. 그 <28일 후> 세계를 원작자 알렉스 가랜드 각본가와 대니 보일 감독이 다시 한번 꺼내들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이번 <28년 후>를 시작으로 삼부작을 발표해 분노 바이러스에 점령된 영국을 세밀하게 담고자 한다. 제작 환경부터 완성한 영화까지 파격과 혁신을 보여준 <28년 후>, 대니 보일은 과연 무엇에 이끌려 분노 바이러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일까. 6월 18일 대니 보일이 참석한 화상기자간담회 문답에서 그 답을 찾아보라.

<28일 후> 이후 20여 년 만의 속편이다. 다시 이 세계관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있다면?
일단 대본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겪었는데, 그게 우리의 첫 영화에서 보여준 장면들과 겹쳐지며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구나 인식하게 됐다. 또 우리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대니 보일은 영국인이다)가 있었다. 이런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어 갔다. 가장 중요한 건 1편에 대한 팬들의 정이었다. 20년이 되도록 식지 않는 애정. 알렉스 가랜드와 전 첫 편에서 함께 하고 우리가 다시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1편의 분노 바이러스와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이번 영화에서 탐구하게 됐다. 이 새로운 스토리를 많은 분들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이다. 굉장히 위대하고 훌륭한 네 배우들이 함께 했으니까 더욱.
<28일 후> 이후 많은 좀비물이 쏟아졌다. 기존 좀비물과의 차별화를 두려고 한 부분은?
이전 영화의 독창적인 세팅과 경험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다. 우리 영화의 감염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런 것을 다르게 보여주면서 좀비물을 재정의하는 영화가 됐다. 그런 부분들을 팬분들이 좋아하셨다. 흥미로운 지점은 사람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도 생존한다는 것이다. 영국을 격리시키면 (바이러스의 생명력이) 소진돼 죽을 것이다 생각하고 격리했는데, 바이러스가 진화를 한 것이다. 그래서 감염자들이 어떤 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 서너 가지 모습을 보실 수 있어서 흥미진진할 것이다. 과거 노섬브리아라고 부르는 영국의 지역에서 촬영했는데 산업화나 농업화가 전혀 되지 않아 태곳적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다. 보시면서 굉장히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다.

<28일 후>의 정통 속편이다. 시리즈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먼저 킬리언 머피다. 이번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총괄 제작을 맡아줬다. 이미 촬영을 끝낸 두 번째 영화와 (준비 중인) 세 번째 영화가 있는 삼부작이다. 이 삼부작과 오리지널 1편의 연결점이 되는 게 킬리언 머피다. 그리고 감염자들도 그렇다. 우리가 봤던 감염자들이 거의 비슷하지만 28년이 흐르면서 그만큼 진화했다. 행동하는 것이 달라졌다. 처음 봤던 감염자들이 폭력적이고 빨랐다면 이번 영화에서 볼 감염자들은 여러 유형으로 진화했다. 바닥을 기어다니며 벌레를 먹는 소극적인 감염자, 오리지널 감염자와 비슷하지만 사냥을 하고자 무리 지어 다녀 더 위험한 감염자들. 그리고 알파라고 불리는 리더다. 바이러스가 스테로이드처럼 작용한, 어마어마한 덩치와 힘을 자랑하는 위협적인 존재다. 네 번째는 여러분들이 영화관에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러디어스 키플링의 시 ‘부츠’(Boots), 활을 교육하는 장면 등 고전적인 요소를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극단적인 재난 상황에서) 생존한 공동체를 생각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기술과 문명 등을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퇴행해서 농경 사회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결정을 해야 하는 과거를 보게 될 것이다. 찬란했던 영국의 과거 모습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착안하게 될 것이다. 궁수는 영국 역사에서 영웅시됐던 사람들이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 같은 작품에도 많이 나오고. 그런 점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아카이브와 레퍼런스를 사용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이다. 살아남은 공동체는 완전히 옛날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한다. 남자아이들은 사냥에 나서고, 여자아이들은 가사를 하도록. 키플링의 시와 여러 아카이브 영상을 사용한 건 이 공동체가 이렇게 과거에 살고 있다,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려는 것이다.

각본가 알렉스 가랜드와의 재회는 어땠나.
정말 즐겁게 작업했다. 우리는 <선샤인>(2007)에서도 협업을 한 적이 있다. 이후 이 프로젝트에 대한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졌다. 그때 가랜드는 이 스토리를 세 가지 파트로 나눠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각 영화가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 충분했다. 각 영화를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등장하고, 맨 마지막은 <28일 후>와 연결돼 스토리 아크(여러 이야기가 이어져 완성되는 장대한 이야기)가 정리된다. 가랜드와의 협업은 정말 즐거운 작업이다. 가랜드는 이제 연출도 하고 있어서 감독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해준다. 서로 공감대가 많이 넓어졌고 그래서 더 즐거웠다. 훌륭한 작가다. 그러면서도 많은 부분 여백을 두었다. 그래서 감독 입장에서 이 여백을 채워가는 재미가 있다. 아마 알렉스 가랜드가 직접 연출을 했다면 또 다른 <28년 후>가 나오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이번 영화는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촬영 장비로 아이폰을 선택한 이유는?
<28일 후>를 보면 홈비디오 같은 느낌이 있다. (DV로 찍어) 해상도가 좋지 않다. 이제 영화 촬영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폰으로도 4K까지 촬영할 수 있고, 그 정도면 상영도 할 수 있는 퀄리티다. 거기에 2.76:1이라고 하는 와이드 스크린 화면비도 사용할 수 있다. 이 화면비는 특수한 화면비(70mm 필름 아나몰픽 촬영시 발생하는 화면비)라서 <오펜하이머>(2023)나 <헤이트풀 8>(2015) 같은 영화에서 썼던 것이다. 우리 영화는 자연이 많이 보이고, 그걸 와이드하게 찍었기에 네이처 필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느껴져 좌우를 계속 살피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포착할 수 있다. 한편으론 우리는 경량 카메라가 필요했다. 여기저기 다녀야 하고 촬영한 지역이 태고의 자연이 남아있는 곳이라 많은 카메라를 들고 가서 자연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흔적은 없어야 하는 배경이어야 했고. 촬영 현장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아이폰 20대를 연결한 리그를 만들었다. 이걸로 촬영한 장면은 어떻게 보면 <매트릭스>의 그 유명한 불릿타임인데, 좀 싸게 만든 불릿타임이라 할 수 있다. 액션의 찰나를 많은 카메라가 찍기에 연출자가 원하는 대로 보여줄 수 있다. 그렇게 감염자들의 모습이나 폭력성을 독창적인 비주얼로 표현하고 싶었다. <28일 후> 이후 아포칼립스, 좀비 영화가 많이 나와서 독창적이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세계관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여러분이 스릴 넘치고 무시무시한 영화로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예상치 못한 마음을 울리는 부분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인간성이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의 인간성을 지속시키는가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28년 후>의 극한 상황에서 우리가 인간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또 영화관에서 진정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기리는 인물이 영화에 나온다.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다 같은 운명이다, 그러니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메시지다.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뭐다 하면서 영화가 위기라는 의식이 있지만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집단 경험을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이 폰으로도 전 세계와 연결돼 있지만 바로 옆 사람과 직접 마주 보지 않고 분리되곤 한다. 이런 부분을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분들이 한 번쯤 생각해주시셨으면 좋겠다.
<28년 후>를 시작으로 새로운 삼부작을 예고했다. 앞으로의 삼부작은 어떻게 전개되나. 그리고 킬리언 머피의 복귀는 어떻게 이뤄지나.
스포일러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니아 다코스타 감독이 연출한 2편은 이미 촬영이 끝났다. 1편 마지막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이어 나온다. 하지만 1편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영화이다. 알렉스 가랜드에게 “1편은 무엇에 대한 영화냐”고 물으니 ‘가족의 본질에 대한 영화’라고 답했다. 주인공의 가족과 전형적이지 않은 가족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될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영화는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묻자 가랜드는 ‘악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게 두 번째 영화는 첫 번째 영화와 아주 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위험한 영화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영화 말미에 킬리언 머피를 보시게 될 것이다. 2편의 가편집본을 봤는데, 머피가 등장하는 순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세 번째 영화는 머피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그때까지는 좀 기다리셔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영화에서 1, 2편의 전제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작들을 볼 때 두 눈 크게 뜨고 보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