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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 필요한〉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일본 애니 거장 신카이 마코토의 영향

추아영기자
〈이 별에 필요한〉
〈이 별에 필요한〉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이하 <이 별>)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콘택트>(1997), <미션 투 마스>(2000) 등 여러 SF 영화의 영향을 받아 2050년 근 미래의 서울과 우주 공간을 환상적으로 창조했다. 또 일본 애니메이션의 두 거장 감독 곤 사토시와 신카이 마코토의 영향이 엿보이는데, '우주와 지상으로 갈라진 연인'의 기본 설정과 빛이 수놓인 작화는 신카이 마코토로부터, 연출 스타일은 곤 사토시와 신카이 마코토 두 감독 모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여러 영화의 이미지와 연출 스타일, 서사의 조각들이 한데 뒤섞인 <이 별>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픽션>(1994)과 같은 혼성모방(패스티시)의 작품이다.

 

혼성모방은 여러 예술 스타일을 차용하고 혼합하는 예술 작품과 그러한 연출 방식을 이른다. 미국의 문학 평론가이자 철학자 프레드릭 제임슨이 자신의 저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에서 주장한 개념이다. 그는 혼성모방을 “공허한 패러디”라 불렀는데, “패러디와 마찬가지로 혼성모방은 특이하고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문체에 대한 모방이다. (…) 패러디처럼 이면에 숨겨진 동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풍자적 충동을 가진 것도 아니며, 웃음조차도 결여된 단순한 흉내 내기인 것”(「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 프레드릭 제임슨, 임경규, 문학과지성사, 2022, 64쪽 참조)이라고 설명했다. 프레드릭은 혼성모방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이미 모더니즘 시기에 예술적 혁신이 소진되었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의 주된 현상으로 여겼다. 이처럼 혼성 모방은 풍자와 비판이 없는 짜깁기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혼성모방의 작품이 부정적인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다. 한지원 감독은 이러한 혼성모방과 오마주를 통해서 여러 작품들을 본인의 감수성으로 소화하고 <이 별>에 녹여 냈다. 그중 영화의 세계관에 가장 굳건하게 자리 잡은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영향을 정리해 보았다.



 <별의 목소리>, 신카이 마코토의 거리의 미학
 

〈이 별에 필요한〉
〈이 별에 필요한〉


<이 별>의 난영(김태리)과 제이(홍경)는 2억 2,500만 km의 거리를 사이에 둔 연인이다. 난영은 화성탐사대원으로 발탁되어 광막한 우주로 떠나고, 제이는 지구에서 그녀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제이는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난영을 그리워하고, 가끔 밀려오는 상실감에 아파한다. 난영도 제이를 그리워하고, 자신이 알지 못할 그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그들은 그렇게 우주와 지상으로 갈라져 힘겹게 사랑을 이어간다.  
 

〈별의 목소리〉
〈별의 목소리〉


“우주와 지상으로 갈라진 연인”의 설정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에서 가져온 듯하다. 15살의 미카코와 노보루도 우주와 지상으로 갈라진 연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이다. 미카코는 UN 우주군으로 선발되면서 인류를 지키기 위해 태양계로 나가고, 노보루는 지구에서 그녀의 연락을 기다린다. 미카코가 광막한 우주로 나아갈수록 둘의 연락은 더 힘들어진다. 송신과 수신의 시간 간격은 더욱 벌어져 며칠에서 1년이 되고, 결국 8년 7개월의 시간이 흘러서야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게 될 만큼 늘어난다. 각자의 세계로 떨어진 두 인물의 외로움, 고독, 상실감은 그들 사이에 놓인 거리에 비례한다. 또 우라시마 효과(일본에서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간 팽창으로 우주와 지구의 시간이 다른 현상을 이르는 말)로 인해 지구에 남은 노보루는 어른의 나이가 되지만, 미카코는 여전히 15살에 머물러 있다. 미카코는 노보루가 자신을 잊어버릴까 봐 걱정한다.

 

〈이 별에 필요한〉
〈이 별에 필요한〉


연락이 닿지 않는 데에서 생기는 불안감과 초조함의 감정은 <이 별>에서도 이어져 두 인물의 감정선으로 작용한다. 연락을 주고받던 난영과 제이는 갑자기 신호가 끊기자 각자의 아쉬움 속에 홀로 남는다. 다만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 미카코, 노보루와 달리 난영과 제이는 홀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이 별>은 청춘 영화의 밝은 느낌과 낭만성이 더 두드러지고, 애수의 감성은 <별의 목소리>에 더욱 짙게 배어 있다. <이 별>의 인물들은 세카이계(남녀로 구성된 ‘나와 너’의 일상적인 문제가 구체적인 중간 항 없이 ‘세계의 위기’, ‘이 세상의 마지막’이라는 비일상적인 문제와 직결되는 작품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불리는 <별의 목소리>의 인물들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별의 목소리〉(왼), 〈이 별에 필요한〉
〈별의 목소리〉(왼), 〈이 별에 필요한〉


1년 후, 미카코의 연락이 닿기 전까지 노보루가 주로 느끼는 감정은 ‘체념’이었다. 노보루는 미카코와 떨어진 후 세카이계의 소년들처럼 행동하기를 회피하고, 이별에 따르는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지도 못했다. 노보루와 미카코는 신카이 마코토의 초기작에서 주로 등장하는 내향적이지만 섬세한 인물,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나약한 인물의 계보에 있다. 이들은 세계와 자기의 관계를 확립하지 못해 정처 없이 내면의 세계를 떠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물들과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향을 받았다. <이 별>은 <별의 목소리>의 세계관 일부를 계승하면서도 세카이계 안으로 들어서지는 않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보인다. 제이는 난영과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이겨낼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려고 한다. 이는 “난영아 나도 너처럼 나아가 보려고. 나를 위해 그리고 너를 위해”라는 제이의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제이는 그 시간 동안 오랫동안 미완성 상태로 남았던 자작곡을 완성하고, 다시 밴드로 복귀하기 위한 공연 준비를 한다. <이 별>의 인물들은 <별의 목소리>의 아이들과 달리 주체성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청춘으로 그려진다. <이 별>은 마코토의 이별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절대적인 격려와 응원으로 바꾼다. 우주에서 난영은 제이에게 속삭인다. “잊지 마 제이. 우주 어딘가에 항상 너를 응원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
 

〈별의 목소리〉
〈별의 목소리〉


<이 별>은 주제의 측면에서도 <별의 목소리>를 계승한다. <별의 목소리>는 신카이 마코토의 과학 기술과 매체 비판 정신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작 지점에서 등장하는 미카코의 내레이션은 이를 잘 담고 있다. “‘세계’라는 말이 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세계’란 핸드폰 전파가 닿는 장소를 말한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 핸드폰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별의 목소리>에서 미카코와 노보루가 주고받는 휴대폰 문자는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선다. 극 중에서 현대 사회의 연결성을 나타내는 핸드폰 문자는 매체(컴퓨터, 인터넷)와 과학 기술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이를 통해 신카이 마코토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감정적 거리까지 좁힐 수 있는지 묻는다. 답장이 늦으면 마음이 멀어진 것처럼 느끼는 현실의 매체 감각은 <별의 목소리>에서 그대로 투영되는데, 이는 매체가 야기하는 소외와 단절을 보여준다. 작품 속 과학 기술은 인간의 진심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며, 인간이 가진 힘의 확장이 아닌 외로움을 증가시키는 등의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별에 필요한〉
〈이 별에 필요한〉


한지원 감독은 <이 별>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매체 비판 의식을 수용한다. 연필과 종이를 이용해 정보를 메모하는 제이와 달리 난영은 연필을 쓰는 것을 당황스러워한다. 영화 속에서 레트로 문화를 즐기는 제이와 현대 문물에 익숙한 난영의 대조는 반복해서 드러난다. 또 <이 별>의 후반부에서는 화성의 신호가 닿지 않는 곳에 고립된 두 남녀가 다시 연락하는 방식이 난영 아버지의 안테나, 무전기와 같은 구식의 방법을 통한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모든 것이 디지털 화면 속에 띄워진 시대에 물성이 있는 아날로그의 방식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난영과 제이의 첫 만남이 홀로그램을 뚫고 들어오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실제의 우연은 디지털의 확률을 넘어서고 그런 우연을 통해 두 남녀의 만남은 이뤄진다.

 

하지만 한지원 감독은 신카이 마코토의 비판 의식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며, 과거에 대한 동경과 향수로 약화해 치환한다. <이 별>은 과거의 문화에 향수를 느끼고 동경하는 제이와 디지털에 익숙하고 최신의 과학 기술을 연구하는 난영, 재즈와 트렌디한 음악, 세운상가와 같이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서울의 이미지로 레트로 감성과 미래의 감각을 공존하게 하고 조화시킨다. 한지원 감독의 매체에 대한 인식은 신카이 마코토보다 조금 더 중립적이면서도 낙관적이다.

 

 

<이 별에 필요한>이 이룬 성취이자 한계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


‘한국의 신카이 마코토’라 불리기도 하는 한지원 감독은 신카이 마코토의 연출 방식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 별>은 미려한 풍경 묘사와 렌즈 플레어(카메라 렌즈 계에서 빛이 산란하거나 반사되어 입사된 원래 상에 없는 밝은 점, 고리, 선, 혹은 안개처럼 뿌연 효과 등의 아티팩트가 나타나는 현상), 캐릭터와 배경에 동일하게 초점을 맞추는 신카이 마코토 작화의 특징과 연출 방식을 공유한다. 특히 난영의 우주선이 화성에 착륙하는 장면은 <너의 이름은>에서 혜성이 떨어지는 장면과 유사하다. 두 장면은 모두 급하강하는 물체의 움직임에 맞춰 음악이 스펙터클을 극대화하고 있다. 음악의 빈번한 사용으로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시키는 방식, 인물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360도 회전시키며 인물의 고조된 감정선에 몰입하게 하는 카메라 움직임, 뮤직비디오의 영상문법을 활용하는 것 또한 신카이의 연출 방식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천년여우〉
〈천년여우〉


<이 별>은 신카이 마코토뿐만 아니라 곤 사토시 감독에 대한 존경심도 숨기지 않는다. 난영과 제이가 거니는 밤거리의 주점 이름은 ‘Paprika’로 곤 사토시 감독의 영화 <파프리카>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서 두 남녀가 다시 작별하는 장면은 곤 사토시의 영화 <천년여우>의 장면을 오마주 한다. 화성에 닥친 토네이도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 난영은 환각을 본다. 환각 속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제이를 만나기 위해 달려간다. 이때, 달리는 난영의 뒤로 시공간이 바뀐다. 그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모든 시공간에서 그녀는 그를 만나기 위해 달려간다. 난영의 간절함을 담은 이 장면은 <천년여우>에서 치요코가 시대를 초월해서 한 남자를 쫓는 매치컷 장면과 이어진다.

 

〈날씨의 아이〉
〈날씨의 아이〉
〈이 별에 필요한〉
〈이 별에 필요한〉


그리고 감독은 다음 장면에서 다시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를 불러온다. 난영은 그녀의 환상 속에서 여러 시공간을 거쳐 제이와 만나지만, 제이의 몸은 흐릿해지다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는 제이를 바라보는 난영의 불안감은 <날씨의 아이>에서 히나의 반투명한 몸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호다카의 두려움과 이어진다. <이 별>은 각각의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가져와 인물들의 감정선에 관객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이입시킨다. 이처럼 한지원 감독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여러 영화의 파편을 재조립해 연출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이 별>의 혼성모방은 이 영화의 성취이자 한계이다. 여러 영화가 펼쳐내는 담론을 제거하고, 각각의 장면의 이미지와 피상적인 의미만 차용하는 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과연 다음 작품에서 한지원 감독은 <이 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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