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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봉준호X로버트 패틴슨 내한 간담회 현장 “개를 연기한다고 생각했다”

추아영기자
로버트 패틴슨(왼), 봉준호 감독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패틴슨(왼), 봉준호 감독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올해 2월 28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북미 개봉: 3월 7일)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이 홍보 활동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기 위해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키 17>의 개봉을 앞두고, 1월 20일 용산아이파크몰 CGV에서 이번 작품의 푸티지 시사 및 배우 로버트 패틴슨 내한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작품에서 성향이 다른 두 미키(미키 17, 미키 18)로 분하면서 1인 2역의 연기를 펼친 로버트 패틴슨과 봉준호 감독이 자리에 참석해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버트 패틴슨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패틴슨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패틴슨 내한 기자 간담회는 로버트 패틴슨이 차기작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한국에 꼭 가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해 성사되었다. 이번 방문으로 한국에 처음 온 그는 준비해 온 한국어 인사말을 수줍게 건넨 뒤 한국을 방문한 소감을 말했다. “안녕하세요(한국어로). 한 번도 한국에, 서울에 오지 않았다는 게 놀랐다. 홍보 활동을 여러 번 했지만, 한국을 방문한 건 처음이다. 감독님과 함께 여러분을 만나 뵙고 싶었다”. 본격적인 질의응답에 앞서 봉준호 감독은 영화 <미키 17>을 “인간 냄새 물씬 나는 인간적인 SF”라고 칭했다. 또 “평범하고 힘없으며 불쌍한 청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느낌의 SF로 여러분들과 만나게 되어서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땀 냄새나는 인간들의 얘기로 각색

〈미키 17〉 스틸컷
〈미키 17〉 스틸컷


<미키 17>은 2054년 근미래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인류는 지구 아닌 다른 곳에서 살기 위해 우주를 개척한다. 그 과정에서 익스펜더블은 위험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미지의 우주 개척을 위해 쓰인다. 익스펜더블 미키 또한 죽음에 가까운 현장에 투입된다. 그는 항성 사이를 이동하는 동안 우주선 외부를 수리한다. 또 우주의 방사선에 피부를 무방비로 노출한 채, 사람의 피부가 방사선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측정하려는 실험의 대상으로 쓰인다. 필수 의약품 임상 실험에도 동원되면서 15분 만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푸티지 시사에서 공개된 일부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에서 관객들에게 작품의 주요 설정을 공유하는 장면들이다. 크게 미키 17이 죽음의 위기에 빠진 장면, 익스펜더블 미키들이 죽음을 겪고 다시 프린트되는 과정, 미키의 과거가 담겨 있다.

영화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장편소설(「미키7」)을 각색했다. 봉준호 감독은 세계관이 방대한 하드 SF 소설을 자신의 시각을 녹여내서 각색했다. 원작의 반복해서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 설정에서 감독은 노동자를 똑같은 톱니바퀴처럼 바라보고, 소모품 취급하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엿본 것이 아닐까. <미키 17>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원작은 과학에 관한 얘기가 많은 하드 SF다. 저는 과학에 큰 관심이 없다 보니 그런 부분은 다 빼고 오로지 땀 냄새나는 인간들의 얘기로 각색했다”고 전했다.

 

봉준호 감독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봉준호 감독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큰 틀을 바꾸면서 주인공 미키의 과거 또한 달라졌다. 원작에서 역사가로 설정되었던 주인공 미키는 영화 속에서 마카롱 가게를 열기 위해 사채를 끌어 썼지만, 가게가 망해 빚을 갚지 못하는 청년으로 재설정된다. 잔인한 사채업자를 피하기 위해 그는 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사회의 끝에 내몰린 미키는 전작 <기생충>에서 보이지 않는 (신분) 사회에서 소외된 기우가 보여준 무료한 청춘의 얼굴의 연장선에 있다. 봉준호 감독은 “원작에서는 미키가 역사가이고, 지적인 얘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땀 냄새나는 인간들의 얘기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미키를 노동 계층, 좀 더 가벼운 인물, 또 더 외로우면서도 가여운 친구로 만들었다. 극한 직업을 가져서 위험한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그런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과거사를 단순하게 했지만 더 외로운 느낌의 인물로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로버트 패틴슨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패틴슨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패틴슨은 미키를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색다른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미키는 자신감이 없는 캐릭터이지만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다. (대본을 보고) 여러 가지 영감이 들었는데, 처음에는 개를 연기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버릇이 나쁜 개를 키웠었다. 교육이 잘 안되고, 집에서 배변했다. 훈련을 시키려 하면, 뒤로 누워서 애교를 피웠다. 그런 점이 미키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벌을 내리지 못하게 하고, 16번 죽고 나서야 무언가를 깨닫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로버트 패틴슨(왼), 봉준호 감독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패틴슨(왼), 봉준호 감독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현장에서는 <미키 17>의 예고편이 공개된 후 로버트 패틴슨의 목소리와 연기 톤이 <더 배트맨>과 대조적이어서 놀란 관객이 많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로버트는 이번 연기 톤을 어떻게 잡았냐는 질문에 “사실 목소리는 이런 작품을 할 때마다 타당한 목소리를 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갑자기 제가 보고 자란 TV쇼의 캐릭터가 생각났다. 그 목소리를 흉내 냈는데, 조금 다르게도 해보고 여러 시도를 해봤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미키 17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불쌍하고 수동적인 캐릭터다. 제 생각엔 두려움이 정말 많고, 본인을 루저라고 느끼면서 ‘최악은 면할 수 있겠지’ 이런 생각으로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것 같다. 삶을 허비하고,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근데 뇌의 일부가 다 전해지지 않은 미키 18이 등장한다. 제가 해석한 미키 18은 17의 잠재된 자아이다. ‘왜 이렇게 못났냐’고 머릿속에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나와서 얘기하는 거다. 17이 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일깨워주는 거다. 무서운 형 같은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로버트의 말을 들은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은 미키의 성장 영화 같은 측면도 있다. 이 불쌍한 친구가 그 와중에 힘든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시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님 같은 분은 전 세계에서 4~5명뿐

〈미키 17〉 스틸컷
〈미키 17〉 스틸컷


봉준호 감독은 로버트 패틴슨의 캐스팅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로버트 패틴슨은 <더 배트맨>과 같은 슈퍼 히어로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샤프디 형제의 <굿타임>(2017)이나 로버트 에거스의 <라이트하우스>(2019)와 같은 미국의 인디영화에서도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그래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키 17>의 미키는 사실상 1인 2역의 연기를 보여야 하는 역할이다. 멍청하고 불쌍한 느낌의 17과 예측 불가능하고 기괴한 카리스마를 뿜는 18 둘 다 커버해야 한다. 그 둘 다 되는 사람으로 처음부터 로버트 패틴슨을 생각했다. 캐스팅 과정은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됐다. (로버트 패틴슨) 본인도 되게 이런 이상한 걸 하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패틴슨은 평소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지켜봤다며,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봉 감독님 같은 분은 아마 전 세계에서 네다섯 분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우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감독이다. 봉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세계관이 특별하다. 근데 말이 되고, 어떤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선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오래전에 <살인의 추억>을 봤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것과 심각한 상황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장르의 구분을 크게 두지 않아서 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보게 한다. 봉 감독님이 저를 생각한다고 했을 때 빠르게 손들었다”고 밝혔다. 옆에서 그의 말을 들은 봉준호 감독은 놓치지 않고, 그에게 “그 네다섯 명의 감독이 누구냐”고 물었다. 로버트 패틴슨은 “아직 커리어를 이어 나가야 해서…”라고 웃으면서 답을 피했다.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어서 그는 봉준호 감독의 작업 스타일을 경험한 소감에 대해 말했다. “이 정도의 작업 스타일을 가진 감독과 작업한 적이 없다. 체계적이고, (계획을) 자신감 있게 실행하고, 적게 찍었다. (다른 현장에서는) 씬을 재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테이크 찍고 바로 다음, 이런 식으로 굉장히 커버리지를 적게 가져갔다. 익숙하지 않았는데 몇 주 지나니까 익숙해지고 자유를 느꼈다. 한두 번만 찍기 때문에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었다. 일주일 지나고 이 현장 최고라고 생각했다”.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마지막으로 봉준호 감독은 이번 작품의 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 말했다. “반복적으로 인간 냄새 물씬 나는 SF라고 말했지만, 어쨌든 SF다 보니 우주의 행성도 나오고, 미키가 큰 우주선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장면도 나온다. 그런 것들을 다 처음 찍으니까 찍으면서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사실 그것보다도... 저의 25년 감독 경력 최초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나샤(나오미 애키)라는 여자 주인공이 있고, 미키와 나샤의 러브 스토리가 있다. 인간이 출력되고 있는 와중에 러브 스토리가 있는데, 이 영화를 멜로영화라고 얘기하면 그건 너무 뻔뻔스러울 것 같지만, 어쨌든 둘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게 제일 뿌듯했다”.